[횡설수설/오명철]元祖, 진짜 元祖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42분


한국인처럼 원조(元祖)를 따지고 집착하는 민족도 드물다. 족발집이 밀집해 있는 서울 장충동 일대에 가보면 사방이 온통 원조 간판이다. ‘원조’ ‘진짜 원조’ ‘원조의 원조’ ‘TV에 나온 집’ ‘1호집’ 등 저마다 원조임을 강조한다. 지역마다 특산 음식에 대한 원조 자존심 대결 또한 치열하다. 전국의 한다하는 음식점 가운데 ‘욕쟁이집’ ‘할매집’이란 옥호(屋號)가 범람하고 있는 것도 원조 논쟁이나 다름없다. 아니라면 ‘욕 잘하는 할머니’가 그렇게 많다는 것일까?

▷동네 규모 원조 논쟁은 최근 아예 지자체 규모로 발전했다. 대게 원산지를 둘러싼 경북 영덕군과 울진군의 자존심 대결,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시인의 출생지에 대한 경남 통영시와 거제시의 법정 논쟁, 설화 ‘별주부전’의 배경에 관한 충남 태안군과 경남 사천시의 기싸움, 의기(義妓) 논개의 출생지에 대한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의 실랑이가 그것이다. 물론 원조 간판을 내건다고 다 원조는 아니다. ‘유사 원조는 별의별 원조를 다 갖다 놓아도’ 진짜 원조가 아닌 것이다.

▷한국 유림(儒林)단체 회원 500여명이 최근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성 취푸(曲阜) 공묘(孔廟)에서 공자에 대한 제사인 치전(致奠)을 올렸다. 한국 성균관이 매년 3월과 9월 장엄하게 치르는 석전대제(釋奠大祭) 의식 절차에 따라 치러졌다고 한다. 정작 중국에서는 이런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문화혁명 당시 공자를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매도하면서 관련 의식을 말살한 것이다. 1980년대 중국학자들이 성균관 석전을 참관하면서 “본고장에서도 사라진 의식을 보존해 오고 있다니”라며 놀라곤 했다.

▷어디 공자에 대한 제사뿐이랴. 예수는 본향인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의 예언자 정도로 간주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인류의 영원한 구원자로 자리매김했다. 불교의 참선수행 전통 또한 발상지인 인도는 물론 이를 크게 발전시킨 중국을 능가해 면면히 전해진다. 공산주의도 혁명의 고향인 소련과 최대 수혜국인 중국을 능가해 북한에서 가장 지독하고 철저하게 존속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인의 원조 의식이 거의 원리주의(原理主義)의 경지에 이른 듯싶다면 지나친 말일까.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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