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응징이냐 화해냐▼
프랑코 사망 후 민주화된 스페인에서 1982년 노동변호사 출신인 곤살레스가 이끄는 좌파가 집권했다. 내전기간 엄청난 피해를 봤던 좌파 쪽에서 당연히 과거문제를 제기할 법했으나 좌파는 과거를 일절 묻지 않았다. 화해정책으로 과거의 아픔을 묻어버린 것이다.
거기엔 프랑코의 유언도 영향을 주었다. 프랑코는 자신이 죽은 뒤 스페인이 다시 좌우파간에 피를 흘리는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화해의 메시지를 유언으로 남겼다. 죽은 뒤 자신이 묻힐 성당 안에 내전 때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한 영안실을 마련토록 한 것이다. 그래서 마드리드 북쪽 약 40km 떨어진 ‘죽음의 계곡’이란 큰 돌산 성당 안에 안치된 프랑코의 무덤 좌우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영안실이 마련돼 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여기 영령들은 좌에서 싸웠건 우에서 싸웠건 모두 스페인을 위해 죽었노라”란 추모의 글이 새겨져 있다.
외국의 지배를 받았거나 혹독한 독재를 겪었던 나라들이 과거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다. 과거를 화해로 감싸안는 나라와 과거를 철저하게 응징하는 나라다. 화해로 해결한 나라는 스페인 외에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 수십년간 독재 아래 살았던 과거의 공산국가들, 그리고 백인의 인종차별정책으로 흑인이 억압을 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들 수 있다. 철저하게 응징한 대표적인 나라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협력자들을 과감히 숙청한 프랑스와 군부통치 이후 문민정부에서 군부통치 핵심인물들을 감옥에 보냈던 남미의 아르헨티나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나치 점령 아래서의 지하투쟁 과정에서 가장 희생이 컸던 공산당과 사회당의 입김이 컸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청산을 하다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다. 군부통치가 종식된 후 집권한 변호사 출신의 라울 알폰신 대통령은 군부통치의 핵심인물 6명을 모두 종신형으로 감옥에 보냈다. 그러자 군부가 세 번이나 쿠데타를 일으켜 정치안정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데다 1000%가 넘는 인플레를 해결하지 못해 재선에서 떨어져 임기 6개월을 남겨놓고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후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군부통치의 핵심인물들을 모두 사면 석방하는 화해조치를 취했다.
▼큰 감동 안긴 만델라의 용서▼
10년 동안의 문화혁명 기간에 많은 희생과 고초를 겪었던 오늘의 중국 지도자들이 문혁을 주도한 소수의 핵심인물을 제외하고 대부분 포용하는 방식으로 문혁을 마무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백인통치 아래서 27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흑인 대통령이 백인에게 보복을 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백인을 용서하는 화해정책을 취한 일은 세계에 큰 감명을 주었다. 과거 공산국가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탄압했던 공산당 간부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법정에 세우지 않고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식민통치와 6·25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등 어느 나라보다도 아픈 과거가 있는 우리가 이제 와서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국민 간에 갈등만 증폭시키는 어리석은 일이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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