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나가사키 출신으로 살아간 역도산. 그건 바로 그의 숙명이었다. 이름을 숨기고, 고향을 숨기고, 자신을 숨겼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영웅 역도산(한국명 김신락)은 ‘천황 다음으로 유명한 일본인’이었다. 1963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역도산은 그 죽음으로만 기억된다. 한국 출신이라는 점을 빼고 그 출생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재일교포 3세인 이 책의 저자는 남북한과 일본 등 3국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그가 191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으며, 1938년 열여섯의 나이로 전국 씨름대회에서 3등을 한 뒤 일본인 형사의 권유로 1940년 요코즈나(스모 챔피언)를 꿈꾸며 일본행을 택했다는 점을 밝혀낸다.
이 책은 영웅담이 아니다. 요코즈나를 꿈꾸며 집념을 불태우던 조선인 소년이 속임수 가득한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거치며 조작된 영웅으로 변모하고, 결국 유리잔까지 씹어 먹으며 가면 속에 정체를 숨기다 비극적으로 스러져야 했던 고독한 생애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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