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언론계에선 1968년 12월 북한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한 이승복군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도 ‘초 친 기사’의 예쯤으로 여겨 왔다. 이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놓고 당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너희는 왜 그렇게 못 썼느냐’는 데스크의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다가 1992년 이것이 ‘허구 조작 작문기사’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승복 진실 보도 공방’이 시작됐다. ‘초 친 기사’와 ‘오보(誤報)’는 엄연히 다르다.
▷엊그제 법원은 조선일보 기사가 ‘기자의 현장취재를 통한 사실보도’임을 확인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이로써 10년 이상 지속돼 온 논란은 일단락을 맺게 됐다. 하지만 씁쓸한 뒷맛은 남을 것 같다. 작게는 ‘공산당이 싫다’는 말의 진위 공방으로 이군 가족이 겪었을 고통이 안쓰럽고, 크게는 우리 사회 일각에 ‘이승복은 허구’라는 그릇된 주장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 안타깝다.
▷이 참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론학에서 기자는 ‘사실을 발굴하는 전문가(fact-finding spe-cialist)’다. 이승복 사건 때 조선일보 기자는 ‘나는 공산당이 싫다’는 말을 발굴 보도했다. 기자가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 취재를 통해 한 걸음 더 나간 보도를 한 것이 훗날 거짓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의도’다. 사실 전달 과정에서 객관성이 유지된다면 설령 ‘초 친 기사’라고 해도 용서될 수 있다. 그러면 조작 주장을 제기한 쪽의 의도는 과연 순수했을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