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안주인’만으론 부족했을까. 비비언은 1934년 영국 영화계에 데뷔했고 미남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올리비에가 ‘폭풍의 언덕’ 촬영차 미국에 가자 비비언도 따라갔다.
비비언은 미국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디션에 참가해 1400여명을 물리치고 스칼렛으로 발탁됐다. 오만하고 성깔 있는 암고양이 표정, 에메랄드 색깔의 눈, 야릇한 미소…. 1939년 개봉된 ‘바람과 함께…’ 영화 속 비비언은 스칼렛이 책에서 막 걸어 나온 것 같았다. 영화는 6개월 만에 13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비비언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51년 비비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시(여주인공) 역을 잘 소화해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에서 전쟁이나 집안의 몰락, 불행한 결혼을 겪으면서 ‘높은 자존심’과 ‘처절한 현실’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는 역을 맡았다.
비비언과 올리비에는 ‘바람과 함께…’ 개봉 이듬해인 1940년, 각각의 배우자와 이혼한 뒤 결혼했다. 배우로서 성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비비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44년 유산했고 다음해 폐결핵에 걸렸다. 약한 몸은 무리한 일정을 견뎌내지 못했고 완벽주의는 정상에서 추락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했다.
1953년 ‘코끼리 걷다’ 촬영 때는 횡설수설하며 예전 영화의 대사를 읊기도 했다. 결국 주인공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바뀌었다. 1956년 또 유산했고 조울증은 심해졌다. 남편 올리비에마저 여배우 조앤 플로라이트에게로 떠나갔다. 비비언과 올리비에는 1960년 이혼했다.
1967년 7월 8일 비비언은 런던의 아파트에서 숨졌다. 당시 언론은 ‘사인은 폐결핵’이며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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