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광범위한 취약 계층의 존재는 사회 불평등을 심화하며 사회 존립의 근저를 위협한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남용 규제와 차별 해소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안으로 제출된 비정규직 관련 입법안은 오히려 비정규직의 확산을 기도하고 있어 그 방향을 거꾸로 잡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별 금지와 시정 절차의 마련으로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사용을 대폭 완화해도 무방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나 차별 금지와 시정 절차가 제대로 작용할지 미지수다.
비정규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차별은 기간만 지나면 아무 잘못이 없어도 고용이 종료되고,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직접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사용사업주에게 아무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기본적인 차별을 그대로 둔 채 나머지 부분만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또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도 도입하지 않은 상태의 차별 금지가 과연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다.
차별 금지나 시정은 현 상황을 개선해 보겠다는 시도로 긍정 평가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비정규직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노동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정규고용원칙 및 직접고용원칙을 일반적 고용 원칙으로 재정립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이는 기간제근로를 사유 제한 방식으로 하고 파견근로는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비정규직 차별 금지 및 시정을 먼저 정착시키고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제한은 그 다음 단계에서 재검토할 일이지, 담보할 수도 없는 차별 금지 및 시정을 이유로 비정규직 사용의 대폭 확대를 허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파견업종의 전면 허용과 파견기간 연장, 기간제근로의 3년 이내 자유로운 사용의 제도화를 내용으로 하는 정부 입법안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켜 고용 질서를 완전히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케 할 것이다.
정부 입법안을 기준으로 한다면 파견업종과 파견기간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도 1년으로 해야 개악을 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접고용간주조항과 1년 초과 근무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하는 조항도 함께 입법되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인간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향해 갈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철학과 결단의 문제다. 비정규직의 확산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먼저 비정규직이 되어도 같은 주장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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