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분열에서 통합으로]2부<1>‘새로운 출발’ 어디서부터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35분


《본보가 11월 초 6회에 걸쳐 연재한 ‘뉴 라이트-침묵에서 행동으로’ 시리즈는 우리 사회 곳곳에 꿈틀거리고 있는 뉴 라이트(New Right)의 움직임에 새로운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뉴 라이트의 이념인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의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본보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뉴 라이트의 지향점과 콘텐츠(내용)에 관해 집중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먼저 뉴 라이트 운동의 출발점은 공공선에 대한 헌신과 도덕적 우월성의 확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와 함께 좌우 양극단의 ‘꼴통 집단’의 목소리만 큰 정치·사회의 이분법적 상황을 극복해 이념의 중간지대를 넓히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베풀줄 아는 보수라야 존경받아▼

보수 진영의 최대 약점이자 대통령선거에서의 두 차례 패배 원인이 도덕성 부재에 있다는 점에는 모든 토론자들이 공감했다. 한 마디로 한국의 보수층은 가진 만큼 나눌 줄 몰랐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 상속세 도입의 주역이 됐던 세력은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보수세력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도 도덕주의의 부활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뉴 라이트가 지향해야 할 방향 중 하나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데에 토론 참석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 라이트 대토론회’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기수 서전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김선영 해외원조단체협의회 후원회 상임위원, 박승룡 기독교사회책임 사무처장,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상인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박영대기자

남성일 교수는 “인위적으로 배분을 강조하고 밀어붙이면 생산의욕 저하 등 부작용을 초래하지만,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한다면 존경받는 보수로 남을 것”이라며 기부 문화의 활성화를 촉구했다.

박효종 교수는 “진보주의자들은 오랜 기간의 ‘박해와 희생’이라는 도덕적 무기를 쌓아 온 반면 대다수 보수층은 권력이든 재산이든 정보든 모든 면에서 자신의 것을 남과 공유하고 베푸는 데 매우 인색했다”며 “그 결과 건전한 일반 보수주의자들마저 등을 돌렸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보수의 도덕성 회복은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교훈을 되새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활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기수 변호사는 “심각한 경제난과 함께 사회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국가의 근간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요청되는 시대적 명제”라는 주장을 폈다. 다수 시민이 사회 지도층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불신하게 되면 사회의 동질성과 결속력이 유지될 수 없다는 논지였다.

박승룡 사무처장은 “모든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법치주의가 무시되는 현상이 일반화한 것도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법을 어기고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등 모범을 보이지 못한 데에 근본 원인이 있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도덕 등 모든 영역에서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인택 교수는 “뉴 라이트가 사회의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느냐 아니냐는 다수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문화현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는 ‘나만의 열매’가 아니다▼

정부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과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는 뉴 라이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다.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좌(左) 편향’이 생산성을 갉아먹고,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다.

남성일 교수는 “좌파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 성과에 따른 책임, 효율성, 시민 등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집단주의와 형평주의를 내세워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등보다는 효율성이 우월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결론난 명제인데도 집단과 평등을 무기로 경쟁과 효율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 교수는 “현 집권세력은 정부와 권력 및 정치 우위의 시스템에 의한 인위적인 자원 배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만 다를 뿐 그들이 비판하는 과거 보수의 잘못된 행태와 다를 게 없다”며 “현 정부도 과거 보수와 마찬가지로 ‘공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가치를 침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선영 박사는 현 집권세력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분법적 사고’를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독재정권에 열심히 항거했던 사람으로서 개혁에 대한 필요성과 열망은 똑같은데도 현 집권세력은 단지 방법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수구꼴통’으로 단죄해버린다”고 안타까워했다.

박효종 교수는 기존 보수를 비판했던 ‘권력 매몰’의 칼날을 진보 진영에도 겨누었다. 과거 보수층이 집권 후 권력 유지에 매몰되고 부패에 물들었듯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집권 후 상식과 합리성에서 일탈해 소수 지지층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권력에의 도취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집권층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민주화 열매’를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박사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다가 그들의 비민주적 독선적인 행태가 싫어서 조용한 비판세력으로 살아왔는데, 마치 민주화가 자신들만의 공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난센스”라며 “진정한 민주화의 공은 정치 지향성을 띠지 않고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이라고 강조했다.

▼기득권 매몰된 ‘수구’는 벗어나야▼

뉴 라이트의 태동은 정부 여당의 좌(左) 편향에 대한 반발 외에도 기존 보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참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권력을 잡고 사회 기득권으로 ‘군림’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도덕성의 실종을 자초한 기존 보수로부터 결별하지 않는 한 ‘참보수’의 가치를 세울 수 없다는 얘기다.

토론에서 박효종 교수는 기존 보수의 맹목적인 권력지향성을 질타했다. 박 교수는 “권력을 잡은 보수가 권력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개인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건전한 시민사회와 멀어지고, 부패하기 시작했다”며 “보수가 자기 아킬레스건을 스스로 끊고 과거와 절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꼴통 보수’가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시민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메신저 거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도 뒤따랐다.

남성일 교수는 “기존 보수는 과거 오랫동안 국가지상주의를 앞세워 힘과 자원을 인위적으로 배분하는 등 독재와 독점을 일삼아 왔다”며 “그 결과 소수의 특권계급을 위해 다수 시민의 권리가 침해당했고,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서도 외면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전상인 교수는 “뉴 라이트야말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최초의 보수”라고 선언했다. ‘꼴통 보수’를 진정한 보수의 개념 밖에 있는 이단아(異端兒)로 규정하면서, 결별을 고한 것이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전문성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뉴 페이스’가 보수층의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비롯됐다.

전 교수는 “뉴 라이트의 등장은 진보진영에도 제대로 된 ‘레프트’를 형성하는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로써 우리 사회는 비로소 건강한 이념 경쟁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존 보수’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모든 보수층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인택 교수는 “정치권력으로서의 보수와 ‘말 없는 다수’로서의 보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70, 80년대 암울한 시기에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항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금 ‘말 없는 다수’로 머물러 있으며 이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뉴 라이트의 튼튼한 토양이라는 것이다.


정리=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