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경우라면 한 해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이 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 국정 어젠다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올 1월 1일 신년사에서 “올해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 민생 안정을 이루는 데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할 각오”라며 “청년실업, 부동산 가격 안정, 사교육비 문제에 적극 대처해 이제 서민들도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사회갈등도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과 호된 질책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심하다는 경제난으로 많은 국민이 혹독한 고통을 겪었고, 정치 사회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한 해를 되돌아볼 때 노 대통령의 국정 운용이 신년사대로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민생 챙기기를 올해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것은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의 최병렬(崔秉烈) 전 대표는 올 신년사에서 “수렁에 빠진 경제와 민생을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민주당의 조순형(趙舜衡) 전 대표는 “국민 화합과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민련의 김종필(金鍾泌) 전 총재도 “정치를 개혁하고 경제를 살려야 하며, 사회갈등도 치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는 17대 총선 이후 정계를 떠났지만 나라가 이처럼 어려워진 데는 야당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여야가 민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슈들을 놓고 1년 내내 지겹게 싸움질을 한 마당에 이제 와서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를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올해는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던 국민만 이래저래 골병이 들고 말았다.
경제5단체장들이 올 신년사에서 반기업적 정서의 확산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했던 것만 해도 그렇다. 노 대통령은 올해 해외 순방 때마다 기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기업의 애로가 시정된 것은 거의 없다.
이제 여야 지도자들이 내년 신년사를 구상해야 할 때가 됐다. 국내외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올해 신년사를 뛰어넘는 새로운 메시지를 제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라건대 그들이 실천하지 못할 신년사를 짜내려 고민하기에 앞서 올해의 약속과 다짐을 왜 지키지 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국민에게 고통과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했으면 한다.
새해에 우리가 여야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듣기 좋은 ‘빈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민생을 되살리는 것이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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