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배수현씨 청각장애 딛고 프로농구SK ‘댄싱 퀸’ 활약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02분


사진제공 SK 나이츠
사진제공 SK 나이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왼쪽 귀는 거의 캄캄하고 오른쪽 귀도 어둡기는 마찬가지. 대화할 땐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알아듣는다. 불러도 잘 듣지 못해 어깨를 두드려야 할 때도 있다.

프로농구 SK 치어리더 배수현 씨(20). 청각장애인인 그는 놀랍게도 치어리더 중에서도 춤을 가장 잘 추는 ‘댄싱 퀸’이다.

그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SK의 홈경기 때마다 댄싱 퀸의 특권인 ‘솔로 무대’를 펼친다. 보아의 노래 ‘마이 네임’에 맞춰 신나는 율동으로 플로어를 달군다. 수십 명의 팬을 몰고 다닐 정도. 경력 1년 7개월밖에 안 되는 애송이지만 춤 실력만큼은 프로농구 10개 팀 치어리더 80여명 중 몇 손가락 안에 든다.

잘 안 들리는데 리듬은 어떻게 맞출까. 다행히 실제 공연 때는 음악소리가 워낙 커 희미하게나마 들리는 바람에 율동하는 데 큰 애로는 없다. 문제는 동료들과 단체 연습할 때. 배 씨는 “옆 사람 동작을 슬쩍슬쩍 보거나 마음속으로 박자를 세며 춤을 춘다”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프로농구 ‘치어리더 댄싱 퀸’에 오른 배수현 씨. “함께 어울려 춤출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매달 수입에서 어머니 병 치료비를 떼고 남은 돈을 모아 올해 뒤늦게 대학입학의 꿈도 이뤘다. “시련을 겪어야 성숙해진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장애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이종승기자

하지만 아무래도 매끄럽지 못할 때가 있을 수밖에…. 배 씨가 소속된 공연기획전문업체 에이치에스컴의 박보현 치어리더 팀장(26)은 “가끔 단체 연습 때 수현이가 음악이 끝난 뒤에도 혼자 율동하고 있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배 씨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도 힙합클럽 등에서 춤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 그는 지난해 6월 청각 장애를 숨기고 치어리더 연습실로 찾아가 무조건 오디션을 보게 해 달라고 졸랐다.

동료들은 배 씨가 워낙 밝은 성격인 데다 내색을 하지 않아 한동안 장애가 있는 줄 까맣게 몰랐다고. 말씨가 약간 어눌하고 가끔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그를 재미삼아 ‘사오정’이라고 놀린 것도 그래서였다.

배 씨의 한 달 수입은 100만 원 안팎. 그는 이 돈을 모아 올해 전문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그동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것. 자궁암 후유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원비도 그가 책임지고 있다.

박 팀장은 “수현이는 연습벌레예요. 다른 멤버들은 매일 3∼4시간 연습하는데 수현이는 6시간이나 한다니까요. 남들보다 1시간 먼저 나와 연습하고, 끝난 뒤에 또 연습하고…”라며 그의 노력에 혀를 내둘렀다.

배 씨의 꿈은 전문적인 귀 치료를 받아 보는 것과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는 것. 초등학교 2학년 때 왼쪽 청각 이상을 발견했지만 병원에 가본지 하도 오래돼 현재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치료는 가능한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이다.

그래도 배 씨는 “시련을 겪어야 성숙해지는 거죠. 지난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희망의 춤’을 추고 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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