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세계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어른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한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M 배리(1860∼1937). 그 자신이 바로 ‘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이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로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분석 대상이었다.
배리는 극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다. 그의 어머니는 형을 편애했고, 형이 사고로 죽자 그는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랫동안 형을 흉내 내면서 살았다. 형이 죽던 때 150cm이던 그의 키는 그 뒤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가 겪은 심적 갈등은 성장을 멈춘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젊은 시절 배리는 이웃집 아이들에게 공상의 나라 ‘네버랜드’에 사는 소년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것이 낙이었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그는 희곡 ‘피터팬’을 썼으며 나중에 소설로도 만들었다.
지난 100년 동안 제작된 수많은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뮤지컬에서 피터팬은 밝고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졌지만 원작에서는 어두운 이미지가 강하다. ‘네버랜드’에서는 해적과 인디언, 잃어버린 소년들 사이에 살인이 수시로 일어나고 피터팬은 “죽는 것은 재미있는 모험”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수시로 악몽에 시달리는 피터팬은 울면서 잠을 잔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앨리슨 루리는 피터팬을 “쾌활하고 천진난만하지만 비극적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든 D 카일리 박사는 “피터팬에 대한 동경은 경제가 어려울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힘든 일상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욕망이 피터팬에 열광하는 ‘어른아이’를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올 한해 한국에서는 대형 뮤지컬 ‘피터팬’이 기획되고 ‘피터팬’ 동화가 완역돼 출판된 데 이어 ‘피터팬 콤플렉스’라는 록그룹이 인기를 끌었다. 요즘 세상 살기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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