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은 어김없이 목욕봉사를 나가는 이 씨는 ‘때 아줌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가 자주 가는 서울시 여성보호센터에는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이 씨의 목소리만 들어도 “때 아줌마 왔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처음엔 다들 ‘한두 달이나 할까’라고 생각했나 봐요. 제 앞에서 옷도 잘 안 벗고, 말도 안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제가 가면 너무나 반가워해요. 그 중 몇 명은 저한테만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 줄 정도로 친해졌어요. 처음 시설에 입소할 때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 ‘부 영등포(영등포에서 발견한, 신원확인이 안된 사람이라는 뜻)’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정신지체인이 자기의 진짜 이름을 말해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몰라요.”
그가 봉사 중에서도 가장 힘든 봉사로 꼽히는 목욕봉사를 택한 데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시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병 수발을 20년째 하고 있어요. 유난히 목욕하는 것을 싫어해 한번 목욕을 시켜 드리려면 온 가족이 총동원돼야 했죠. 한동안 집에서 모시다가 상태가 악화돼 지금은 요양원에 가셨는데, 시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목욕봉사를 합니다.”
그는 1981년 남편 박종철 씨(51)와 결혼한 뒤 줄곧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10여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어머니의 대소변 받아내는 수발을 도맡아 했다.
“남들은 오랫동안 그 고생을 했으면서 왜 또 자청해서 그러느냐고 말리지만 전 이 일이 그냥 좋아요. 밉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시어머니도 같이 벗고 목욕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시어머니는 딸보다 저를 더 찾으세요. 그렇게 목욕하기 싫어하지만 막상 목욕 후에는 당신의 몸에서 풍기는 비누 향을 좋아하시죠. 다른 분들께도 그런 기쁨을 주고 싶었어요.”
그가 매주 월요일 찾아가는 서울시 여성보호센터는 주로 치매 또는 장애를 갖고 있는 노인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는 이곳 외에도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와 시각장애인 보호시설인 루디아의 집에서도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1년 전부터는 장애인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중고등학생 두 형제의 실질적 엄마 노릇도 하고 있다. 이 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청에서 주는 ‘올해의 자원봉사상’을 받았다. 그는 내년부터는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복지문제를 공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선행을 하는 데에도 집안 내력이 있는 것일까. 그의 친정아버지 이부종 씨(72)와 박민선(23) 재은(21) 정수(20) 3남매가 그를 도와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법무사 일을 오랫동안 하다 10년 전 은퇴하신 친정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한약이라도 지어주고 싶다며 오랫동안 수지침이랑 한의학을 공부하셨어요. 아버지께 가족들을 위해서만 쓰지 마시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죠.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하는 일을 두고 ‘몸 생각은 않고…’라며 마뜩찮아 하시던 아버지는 처음엔 ‘나까지 끌어들이느냐’고 역정을 내셨어요. 그래도 자꾸 권하니까 마지못해 나섰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열심히 하세요.”
친정아버지 이 씨는 ‘한우물봉사단’ 고문으로 장애를 가진 노인들을 찾아 의료봉사를 해 온 공로로 서울시장이 수여하는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큰딸 민선 씨와 공대에 다니는 둘째딸 재은 씨는 엄마가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매주 정기적으로 방문, 아이들의 심리치료 및 학습을 도와주고 있다. 영국에 유학 가 있는 아들 정수 씨도 방학 때마다 귀국해 아이들의 영어공부를 돕는다.
“온 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욱 화목해졌어요. 어쩌면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이상임씨는
△1955년 경기 양주 출생
△1977년 국제대 의상학과 졸업
△1994년 동생과 함께 의류회사 ‘우진 트렌드’ 설립, 2002년까지 경영
△1999년 시각장애인 시설 ‘루디아의 집’ 에서 목욕봉사 시작
△2004년 12월 서울 강남구청으로부터 ‘올해의 자원봉사상’ 받음
△명지대 사회복지대학원 입학 예정
(2005학년도)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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