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0년 파나마 노리에가 美압송

  • 입력 2005년 1월 2일 18시 36분


1990년 1월 3일, 흰색 장군제복 차림의 마누엘 노리에가는 파나마주재 교황청대사관을 걸어 나와 미군 헬기에 올랐다.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 지 14일 만의 ‘항복’이었다. 최후의 은신처였던 가톨릭교회도 ‘미국의 타깃’을 보호해줄 수 없었다.

지식인들은 “정복한 나라의 지도자를 사슬에 묶어 끌고 왔던 로마제국의 행태가 2000년 만에 재연됐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범죄자 체포를 이유로 니카라과대사관에 총질을 하고, 쿠바대사를 연행한 미군의 ‘외교적 만행’은 세계를 경악시켰다.

파나마의 실권자로 군림해온 노리에가가 미국 법정에 서게 된 죄목은 마약밀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와 노리에가는 과거 미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파나마 정보책임자로서 친밀한 관계였다. 노리에가는 법정에서 “CIA는 내게 거액을 주고 중남미 정보를 챙겼고 나와 마약조직의 연계망을 이용해 니카라과 우익반군을 지원했다”며 “내가 독자노선을 추구하자 제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리에가의 철권통치도 사실상 미국의 지원 내지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끼고 있는 이 지역에 친미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물론 노리에가가 미국 눈 밖에 났다고 해서 파나마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가 숨어 있던 교황청대사관 앞에서 수천 명의 군중은 독재자를 처형하라고 외쳤다. 당시 언론은 “노리에가는 파나마보다 미국의 감옥생활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노리에가는 호사스러운 감옥생활을 했다.

TV와 헬스기구를 갖춘 방 3개짜리 ‘숙소’에서 전화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옛 동업자에 대한 예우였을까. 그는 1991년 징역 4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부시는 판결 직후 “미국은 파나마 국민을 야만적 전제정치로부터 해방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그의 아들은 또 다른 ‘독재자’인 이라크의 후세인을 잡고 똑같은 논평을 했다. 파나마 진격을 지휘했던 국방장관은 현재 부통령이다. 다음 미국의 ‘공공의 적’이 누가 될지 주목된다.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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