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다. 선거 결과 노태우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민정당이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4당 분립구도가 형성됐다. DJ의 평민당, YS의 민주당, JP의 공화당 등 야 3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된 것이다. 국회 임기가 시작되면서 ‘황금분할’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비록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구도였지만 4당간에 견제와 균형, 협상과 타협의 정치 문화가 싹튼 것이다.
집권여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 해도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야 3당이 연합해 정부 여당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권 부활 등 국회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당시 통과된 법안 대부분이 여야 합의에 의해 처리됐다. 말 그대로 황금분할의 정치였다.
그러나 1990년 민정, 민주, 공화당이 합당해 민자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다시 전개됐고 국회는 변칙과 파행을 거듭했다. 여당은 수시로 법의안의 날치기 통과를 시도했고, 야당은 의사진행 방해, 회의장 점거 등 실력 저지로 맞섰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여든 야든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일 경우에는 늘 대화보다 힘이 먼저였다.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현재의 17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4개 쟁점 법안 처리 시도에서 보듯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수(數)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여당이 과반 의석이 아니었다면 정국의 전선(戰線)이 그처럼 가파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열린우리당 의석은 150석이다. 1석만 잃으면 과반이 붕괴된다. 1, 2심에서 당선 무효형(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은 의원만 11명이다. 각각 1, 2명인 세 야당에 비해 훨씬 많은 수다. 이 바람에 당내에서는 ‘지도부가 뭘 하고 있느냐’ ‘사법부가 여당을 우습게 본다’는 등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곧 과반 의석이 무너지는 데다 4월 재·보궐선거 전망도 그렇게 밝지 못해 당이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와 통하는 법이다. 당으로서는 과반 붕괴가 안타깝고 속상할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나쁜 일이 아니다. 힘의 정치에서 협상과 타협의 정치로 가는 전기(轉機)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52석(열린우리당) 대(對) 121석(한나라당)이라는 지난해 총선 결과는 여당에는 소신 있는 국정 운영을, 야당에는 적절한 견제를 주문한 국민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그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정치 싸움으로 허송세월을 했다. 오늘이 고단하면 어제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어느 정당의 독주(獨走)도 허용되지 않았던 그 시절 ‘황금분할’의 정치가 자꾸 떠오른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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