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관계자는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 모양”이라며 “사소한 사안을 놓고 다툼이 벌어져 경찰서까지 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같은 기본적인 인사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많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현대인의 분주한 일상에 쓸려 빛이 바랬다.
왜 그럴까. 서울대 한상진(韓相震·사회학) 교수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지극히 낮은 시민의식은 인사를 나누지 않는 사회문화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출세와 성공이라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하는 ‘돌진적 근대화’의 영향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는 여유가 크게 부족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밝은사회운동’ 한국본부 이환호(李渙鎬) 사무국장은 “인사라는 것이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구실을 해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는 배려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갖춰야 한다는 것. 인사는 작은 일이지만 이런 기본을 지킬 때 인정이 싹트고 인간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목동아파트 9단지에는 지난달부터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이웃 사귀기 친절 캠페인’을 올해 주요 사업으로 정한 뒤 ‘먼저 인사하기 운동’을 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2주 동안 입주자 대표들과 부녀회 임원, 경비원 등이 아침 일찍부터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인사나누기 캠페인을 벌인 데 이어 엘리베이터에 ‘먼저 인사하기’ 포스터를 붙이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덕분에 주민 김모 씨(43)는 회사 출근길이 즐겁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주민 대여섯 명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 때문.
부산에서 활동하는 교통문화운동시민연합은 2002년부터 버스 운전사와 승객 간 인사주고받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연합은 2700여 대의 시내버스 안에 ‘인사는 아름답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여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인사교육을 실시했다.
이 단체의 주영곤(周永坤) 대표는 “시행 초기만 해도 서로 묵묵부답이었던 운전사와 승객들이 이제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심지어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며 “버스 불친절 관련 민원도 40% 가까이나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은 ‘인사는 내가 먼저, 밝은 표정으로, 밝은 음성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3년부터 “안녕하십니까”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는 인사를 일상화하고 있다.
외래간호팀 강민자(姜敏子) 씨는 “환자들에게 친절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직원들의 관계까지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에 수십 차례 서로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최인철(崔仁哲·심리학) 교수는 “인사는 ‘내가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작은 일”이라며 “‘예의범절을 지키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본을 지킬 때 성숙한 사회가 이뤄진다.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인사를 건네 보자.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외국에선▼
세계 각국에서는 올해 들어 한국의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미사(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인사나누기 운동’과 같은 캠페인을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의 ‘봉주르(안녕하세요) 캠페인’.
1994년 프랑스 정부는 거만하며 상냥하지 못한 프랑스인의 태도가 외국 관광객을 감소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친절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광업계가 중심이 돼 범국민적 캠페인을 전개한 결과 프랑스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봉주르”라고 인사하는 것이 생활화됐다.
10년 넘게 지속된 캠페인은 지난해 ‘프랑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캠페인으로 확대됐다.
싱가포르에서는 1970년대부터 ‘범국민적인 예절운동’을 전개했다. 행정기관과 기업에서는 친절을 으뜸 덕목으로 삼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서로 밝게 인사하기’, ‘친절하게 길 가르쳐 주기’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절운동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한 운동은 1979년 정부의 주도로 진행된 ‘국민친절운동’으로도 발전했다. 관광청 주관으로 이뤄진 이 운동은 ‘미소 싱가포르(Smile Singapore)’로 불리면서 미소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줬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초반부터 ‘작은 친절운동’을 벌이고 있다.
친절운동을 주도한 조직은 민간단체인 ‘작은친절운동본부’로 전국적으로 250만 명에 이르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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