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이 총리의 ‘和而不同’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10분


올해는 4자성어로 신년 메시지를 전한 정치인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다. 정치권에 부쩍 겉멋이 든 듯하다. 그러나 그 깊이나 운치가 옛 정치인에 미치지 못해 대부분 열흘도 못가 잊혀졌다. 그중엔 아직 그럴 만한 품격을 갖추지 못한 인사의 설익은 메시지도 있었다. 다만 하나는 꼭 머리에 새겨 둘 필요가 있어 다시 떠올려본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 그것으로,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코드를 따지면 화이부동할 수 없다▼

두어 달 전 외국의 술자리에서 한국의 야당과 비판언론을 향해 민망할 정도로 적의를 드러냈던 이 총리가 갑자기 화(和)를 말하니 귀가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야의 볼꼴 사나운 싸움질 뒤끝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 통에 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해를 맞은 사실도 기록해 두자. 1월 1일에 국회 본회의가 열린 것은 1958년 이후 47년 만의 일이라니 참 유난스럽기도 했다.

화이부동의 화에 대해서는 심오한 해석이 많지만, 간단히 암수가 어우러져야 생명이 잉태되는 이치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동(同)의 의미는 대칭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의 동은 역사적으로 섬뜩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무솔리니 추종자는 모두 검은 셔츠를, 히틀러 행동대원은 모두 갈색 셔츠를 입고 한 패거리임을 과시했기에 하는 말이다.

신년정국을 조명해 보면 이 총리가 말한 화이부동의 허실이 한층 명료해진다. 우선 4개 쟁점법안 중 신문법안만 합의 처리한 여야의 의심스러운 거래는 결코 화이부동이라 할 수 없다. 사이 나쁜 사람들이 타산에 따라 어깨동무를 한 격이니 불화이동(不和而同)이 옳겠다. 그 직후 여야 의원들이 무더기로 동반외유에 나선 것은 그런 표현조차 낯 뜨겁다.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의석 유지가 위태로워지자, 불과 1년여 전 민주당을 깨고 나간 일부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슬그머니 군불을 때고 있는 합당치 않은 합당설도 염치없는 불화이동이기는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끊이지 않는 내홍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저마다 셈이 달라 아옹다옹하기 때문이다.

여권에 화이부동의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도 있다.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인사파문 뒤처리를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처럼 신속하게 비판여론을 수용해 대국민 사과를 한 전례가 쉬 떠오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장관 인사청문회를 제안한 것 또한 열린 자세였다. 그뿐만 아니라 인선에 관여한 청와대 핵심 참모진의 일괄사의 표명 역시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깔끔했다.

하지만 화이부동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이 총리 자신의 처신은 영 개운치가 않다. 이 전 부총리의 중대한 흠결까지 감싸면서 그를 적극 천거했으면서도 일언반구 사과나 유감표명이 없는 이 총리에게선 화합의 의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인사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은 강력히 요구하면서 자신들과 코드가 통하는 이 총리는 보호하고자 하는 일부 여당 인사들에게서 뇌동의 어리석음만 확인하게 된다.

▼총리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아야▼

아직은 여권의 화이부동에 대한 우려와 희망이 교차한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화이부동이 신년정국의 화두가 된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는 정치권의 화이부동을 구현할 여건도 좋은 편이다. 어쩌면 현 정권 임기 중엔 그럴 수 있는 게 올 한해뿐일지도 모른다. 그 길목에서 이 총리 스스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도 사과했는데 총리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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