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독도보전協 회장직서 물러난 신용하 교수

  • 입력 2005년 1월 14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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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교수의 학문 세계는 한국 근현대 사회사에 대한 조명에서 시작해 독도와 백범 연구로 이어졌고, ‘독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데서 보듯 궁극적으로는 행동으로 연구결과를 실천하는 데에 이르렀다. 박영대 기자
신용하 교수의 학문 세계는 한국 근현대 사회사에 대한 조명에서 시작해 독도와 백범 연구로 이어졌고, ‘독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데서 보듯 궁극적으로는 행동으로 연구결과를 실천하는 데에 이르렀다. 박영대 기자
《신용하(愼鏞廈) 한양대 석좌교수(백범학술원 원장)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도(獨島) 지킴이’다. 1996년 15개 독도 관련 단체의 연합체인 ‘독도연구보전협회’를 창립해 최근까지 회장을 맡아왔다. 독도의 역사, 독도가 갖는 정치경제적·지리적 의미를 누구보다 해박하게 꿰고 있는 그이지만, 정작 그의 전공은 사회학이다.》

○ 우리 대중문화 자본력 취약

독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회학자가 왜 독도 얘기만 나오면 만사 제쳐놓고 뛰어드는 걸까. “신라시대부터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일본이 또다시 침탈하려 하는데, 이를 막아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국민의 의무입니다. 말하자면 국방의 의무와 같은 것이죠. 나라를 지키는 일에 나와 남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독도의 진실’을 설명하는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더욱 빛난다. 고집스러움이 묻어나는 그 ‘인상파’적 표정에 공연히 ‘엇박자’를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독도를 다시 침탈하려는 일본, ‘나쁜 일본’의 속셈을 폭로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일본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요, 문화적 다양성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또 다른 ‘실체’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고 있는 것 아닌가.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그의 답은 이렇다.

“한일이 활발하게 문화교류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고급문화와 학술문화, 양국의 민족문화, 과학기술, 첨단산업 교류는 활발해질수록 상호 호혜적이지요. 하지만 대중문화의 교류는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일본 대중문화는 그 퇴폐성과 폭력성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대중문화는 산업과 직결되는데 일본에 비해 우리 대중문화산업의 자본력은 아직 취약합니다. 때문에 한일 대중문화 교류에는 지성인과 문화인의 여과(濾過)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화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뤄져야지, 그걸 여과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가 여과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요.

“그걸 법률이나 위력으로 하면 부작용이 있지만, 교육자나 언론매체가 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들이 여과장치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용사마’ 열풍에서 보듯, 요즘은 오히려 일본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용사마 열기라고 하지만 그건 한국인에 대한 일반적인 호감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배용준 씨 개인에 대한 선호일 뿐입니다. 일본의 대중은 평화 시에는 국가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 정책과 다른 다양한 행동양식을 나타냅니다. 한류도 그런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주로 주부층에서의 유행일 뿐 일본의 기간세력이나 대학생 청소년층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는 여러 층위의 집단이 있지만 국가 이익의 극대화, 군사대국화, 아시아에서의 주도권 확보라는 국가정책 기조는 확실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독도에 대해서도 한반도 유사시에는 침탈하려는 정책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토를 지키려면 일본에 대한 경계와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 중국과의 연대 또한 신중해야

일본에 대한 경계의식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일 게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그렇지 않게 돌아가는 측면도 있다. 지금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전에 뒀다는 말이 나올 만큼 국제 정치무대에서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은 상임이사국이 될 객관적 자격이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전쟁을 하고서도 한국과 중국 등 피침략국에 대해 제대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역사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한국도 반대해야 합니다. 침략행위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인정하는 것은 두고두고 역사에 비판받을 일입니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잠재력을 지닌 유일한 나라로 꼽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을 군사·정치면에서 아시아의 리더 국가로 밀어주려 하고, 그런 미국의 정책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도 포함될지 모른다는 점이 일본을 고무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공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 중국과의 연대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신 교수는 이 또한 반대한다. 최근 고구려사 왜곡에서 보듯, 중국은 언제든지 우리를 종속적 주변국으로 포섭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우리가 살 길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비판하면서 중국의 패권정책에도 반대하는, 독자적 독립 노선을 걷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 독도학회 회장으로 활동 계속

노(老)교수의 나라 걱정은 그 범위도 넓지만 얘기도 끝이 없다. 단순히 입으로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열정파다. 1996년 1월 일본이 독도를 기점으로 한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언하며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을 한일 양국의 EEZ 구획선으로 하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독도학회와 독도연구보전협회를 만들었듯이.

그가 독도 문제에 대해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얼까. “원래 19세기와 20세기의 민족문제를 공부했습니다(그는 한국 근현대 사회사 연구로 5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자기 영토에 편입하고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공부하던 자료 중에서 당시 일본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면서도 자국 영토로 슬쩍 편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자료들을 소개하다 보니 독도에 대해 글도 쓰게 되고, 독도를 연구 대상으로 삼게 됐죠.”

마침 14일 일본의 시마네 현이 100년 전 독도를 자기네 현 부속도서로 고시한 2월 22일을 독도 즉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홍보행사를 벌일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어불성설’이라며 냉소한다. 영토 편입을 하려면 그 땅이 무주지(無主地)여야 하며 주변국에 대한 사전조회 및 국제고시를 해야 한다. 그러나 1905년 당시 일본 내각은 독도가 ‘조선의 우산도’라는 내무성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월 28일 독도의 영토 편입을 의결하고는 이를 ‘국제고시’하는 대신 시마네 현에 넘겨 현 관내 고시토록 했다. 말하자면 시마네 현 고시는 독도 편입이 정당치 못했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는 설명이다.

독도연구보전협회 회장직은 이달 5일 동아일보 김학준(金學俊) 사장에게 인계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민족과 독도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지난해엔 영토시리즈를 통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재조명했습니다. 또 동아일보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얼과 권익을 지켜왔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신문사의 사장이니만큼 독도 지키는 일을 누구보다 잘해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독도연구보전협회 산하 단체의 하나인 독도학회 회장으로서의 활동은 계속할 생각이다. “책임은 줄었지만 활동은 더 무겁게 할 계획입니다. 독도를 지키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니까요.”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신용하 교수는▼

△1937년 제주 출생

△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교수

△1986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초대 소장

△1987년 서울대 규장각 실장

△1993년 한국사회학회 회장

△1994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1998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2000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2001년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2001년 백범학술원 원장(현)

△2003년 서울대 명예교수·한양대 석좌교수

△저서〓독립협회연구(1976년), 한국민족 독립운동사연구(1985년), 한국현대사와 민족문제(1990년),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1993년), 독도의 민족 영토사 연구(1996년),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2001년) 의병과 독립군의 무장독립운동(2002년) 백범 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2003년) 등.

△삼일문화상(1982년), 국민훈장 모란장(1996년), 대한민국학술원상(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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