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색깔이나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역시 외교나 대북 정책이다. 국내 정책들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가운데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엇비슷해진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대단히 진보적이었다. 제6공화국의 북방정책을 떠올려 보라.
탈(脫)냉전의 국제 기류를 제때 읽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수교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북방정책이다. 6공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북방정책의 성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외교 이니셔티브로 한국 외교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한국 외교의 도약’·최병구·2003).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정부가 북방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보여 준 기동성과 유연성은 놀라운 것이었다. 1989년 2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불과 3년여 만에 폴란드, 유고,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동독, 소련, 알바니아, 중국과의 수교를 매듭지었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그 기세에 눌려 북한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가겠다”고 한 노태우 대통령의 다짐대로 된 것이다.
북방정책이 없었다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도 추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對)러시아· 대중국 수교의 인프라부터 깔아야 했을 텐데 햇볕이고 바람이고 간에 무슨 여력이 있었겠는가. 오늘날 자유롭게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을 벌일 수 있게 된 것도 연원을 따지자면 북방정책 덕이다. “한반도는 더 이상 냉전의 고도(孤島)가 아니다, 우리 손으로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때 비로소 생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그런 전통을 가진 당이다. 냉전의 벽을 제 손으로 허물어 본 경험과 철학을 가진 당이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북방정책의 당, 한나라당이 어떻게 해서 수구로 몰리게 됐을까. 뒤이은 김영삼 정권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색깔 공세만 펴면 어떤 선거든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한 사고방식,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달라지려면 북방정책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냉전의 동토(凍土) 위에서도 나라의 활로를 열었던 그 용기와 도전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할 일이 좀 많은가. 4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50년, 100년 생존전략부터 내놓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그럴 만한 경륜과 역량이 있는 당이다. 신(新)북방정책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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