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서는 국보법을 존치하면서 그 내용만 개정하자는 ‘존치개정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권에서는 국보법을 무조건 폐지하자는 ‘전면폐지론’, 우선 폐지한 뒤에 입법 보완하자는 ‘형법보완론’ 및 ‘대체입법론’ 등이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국보법을 무조건 또는 우선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형법이론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조건적 폐지론은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 등은 현행 형법으로 규율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형법에는 국보법보다 더 반통일적인 면이 있다. 6·25전쟁을 거쳐 제정된 현행 형법은 간첩죄의 구성 요건에서 북한을 적국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정부를 참칭한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원초적 반국가단체로 지목하는 국보법도 문제라는데, 북한을 적국으로 지목하는 것이 틀림없는 현행 형법은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무조건적 폐지론은 세밀한 입법적 검토 없이 변화의 당위론을 감성적 측면에서 내세운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뿐이다.
국보법을 폐지하고 그 일부 내용을 형법에 편입시키려는 것도 법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남북통일 이전의 한시적 실체인 북한에 대해 특별 규율할 것이 요구된다면 그 형식은 일반 형법이 아니라 특별 형법으로서의 한시법(임시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폐지 후의 대체입법론은 국보법의 부정적 이미지와 아픈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린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그 규정 내용은 존치개정론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대체입법을 통해 아픈 역사의 상처를 지워버리는 것도 좋겠지만, 역사의 아픈 부분은 도려내되 그 존재만큼은 한시법의 목적을 다하는 시기까지 유지 계승해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
국보법을 우선 폐지한 이후에 사후적으로 입법 보완을 할 경우는 법 집행상의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보법은 한시법이므로 그 폐지 후에도 기존의 법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지, 형 집행 중인 자에 대해서는 형 집행을 면제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 집행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보법의 폐지와 입법 보완은 적어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즉, 동시적으로 제정될 보완 법률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경과 규정(부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생각하건대, 민주 법치국가는 세계관의 중립성을 추구하고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겠지만, 세계관의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민주 질서 그 자체를 파괴하고 일방의 사상만을 강요하려는 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이 점은 상대주의를 완성한 법 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자신이 종국적으로 ‘방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국보법의 개폐 논의는 적어도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이 설정될 입법의 형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내용은 개인의 사상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아니라 북한을 위한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형사처벌의 주된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손동권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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