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익명투서에 과민반응 軍 수뇌부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2월 3일 17시 44분


국방부는 3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 중인 자이툰부대에 감사관실과 국군기무사 관계자 등 6명으로 구성된 특별감찰단을 파견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특감의 배경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방부 관계자는 “자이툰부대를 점검해 보라는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다른 목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공식발표와 달리 이번 감찰의 직접적인 원인은 최근 국방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날아든 익명의 투서 때문이었다. 이 투서에는 자이툰부대의 기무부대장인 L 중령이 장군 직위에만 허용된 욕실을 설치해 달라고 공병대에 요구하고 현지 납품업체 선정과 부식 조달에도 개입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은 진위 확인을 지시했고 기무사와 국방부 감사관실은 자이툰부대 지휘관과 휴가 장병들을 상대로 1차 조사를 실시해 일단 ‘음해성 투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이같은 조사결과가 부실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이툰부대에 대해 일주일에 걸친 특감을 지시한 것이다. 물론 군기(軍紀)가 생명인 군 조직에 부패나 비리의혹이 감지되면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군의 한 관계자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미확인 투서 한 통에 군 수뇌부가 과민 반응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최근 군 검찰과 육군이 명운을 걸고 재판 중인 육군 장성진급비리 의혹사건이 불거진 것도 국방부 인근 군인아파트에 뿌려진 익명의 투서 때문이었다.
최근 국방부는 올해부터 익명이나 가명의 민원은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도록 인터넷 민원실명제를 시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민원들이 익명이나 가명으로 특정인을 헐뜯는 내용이어서 명예훼손은 물론 지휘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가 음해성 익명 투서에 휘둘려 또다시 과민 반응을 보이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히 변변한 환송 행사도 없이 몰래 출국해야 했던 자이툰부대 장병들이 이번 일로 사기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