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근로소득보전稅制 성공하려면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00분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가능하면 올해 정기국회에 근로소득보전세제(EITC) 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1975년 이후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EITC는 가난한 집을 대상으로 근로소득보다 공제할 세액(稅額)이 많으면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일정수준까지는 소득이 많을수록 지급액이 늘어나는 방식이어서 빈곤층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유인(誘因)이 있다.

EITC가 일을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근로빈곤층’을 절대빈곤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실증연구로 입증됐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최저임금제보다 시장 친화적(親和的)이라는 점도 이 제도의 매력이다. 근로빈곤층 수가 이미 132만 명에 이르고 비정규직 등 불완전 고용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이 제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EITC를 도입하려면 전제조건과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과세당국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근로소득은 물론 사업소득, 부동산임대소득, 금융소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리지갑’을 가진 봉급쟁이들이 근로소득은 적지만 음성수입은 훨씬 많은 탈세범을 부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가구 소득 파악률이 34%에 불과한 우리 실정에서 이는 결코 기우(杞憂)라고 하기 어렵다. 더구나 EITC는 가구 합산과세체계를 전제로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부부간 자산합산과세가 위헌이라고 2002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정해진 시간표에라도 쫓기듯 EITC 도입을 서둘러선 안 된다. 공평하고 투명한 과세인프라를 먼저 닦아놓고 위헌 여지가 없는 구체방안을 마련한 뒤 입법을 논의하는 것이 옳은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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