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해 보였던 ‘통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두 나라 국민들을 하나로 묶은 아랍 민족주의의 열기였다. 역사적으로 이라크에서 아프리카 북서부까지 이슬람을 믿고 아랍어라는 공통의 언어를 쓰는 하나의 ‘아랍민족’이 존재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 밀려들어온 영국 프랑스 세력은 이 지역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분할 통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각 지역들이 제각기 독립한 뒤에도 분할은 계속됐다.
두 나라를 다시 뭉치게 만든 것은 이스라엘의 위협이었다.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 (수에즈 전쟁)의 패전은 이스라엘의 인접국인 두 나라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 정권을 잡은 시리아의 바트당과 이집트의 국민연합은 ‘아랍권의 통일’이라는 정강정책을 구체적 실천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갈라져 살던 두 국민의 통합은 쉽지 않았다. 카이로로 옮긴 시리아의 권력자들은 뿌리가 잘려나간 식물처럼 힘의 근원을 잃어갔다. 시리아에 파견된 이집트 출신의 군사·정치 고문들은 ‘총독부’처럼 월권을 행사했다. 1961년 옛 야당인 인민당과 군대가 일으킨 쿠데타로 시리아는 ‘통일 아랍 공화국’에서 이탈했다. 이집트는 10년 뒤까지 ‘통일 아랍 공화국’의 국호를 유지했지만, 3년간 지속됐던 이 공화국의 국기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시리아다.
통일 아랍 운동의 한 주역이었던 시리아는 오늘날 다시 아랍 ‘공동전선’의 주역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16일 알 오타리 시리아 총리와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이란 부통령이 미국의 위협에 공동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평정한 미국은 오랜 ‘눈엣가시’이자 이라크를 둘러싸고 있는 두 나라를 어떻게 다룰까. 분명한 것은, 지역의 민심은 ‘통일된 아랍’의 영광을 언제나 간절히 원해왔다는 사실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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