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OB 판결’

  • 입력 2005년 2월 21일 18시 02분


골프 팬 중에는 골프 자체보다 내기를 더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술값으로 몇백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지만 내기 골프에서 단돈 1만 원을 잃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 중에는 왕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한 접대 골프에서 내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돈을 잃어주는 사례도 있다. 내기 골프로 사업체와 집, 심지어 아내를 빼앗긴 사례도 전설처럼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적당한 액수의 내기 골프가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옹호론도 있다.

▷한 판사가 “화투나 카지노 등과 달리 골프는 승패의 전반적인 부분이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에 의해 결정되는 운동경기”라는 이유로 억대 내기 골프를 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액 내기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겠지만 사회 통념에는 대치되는 판결이다. 판사는 더 나아가 “내기 골프가 도박이라면 프로골프에서 매 홀 경기결과에 따라 상금이 결정되는 ‘스킨스(Skins)’게임도 도박에 해당한다”는 논지를 편다.

▷하지만 골프는 예외성이 많은 운동이다. 홀인원 한 번 못해 본 프로골퍼가 있는가하면 처음 필드에 나간 아마추어 골퍼가 홀인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년 가까이 골프를 친 LPGA 스타 박지은도 지난해 프로암대회에서 처음으로 홀인원을 기록했고, 박세리는 그나마 한 번도 없다. 내기 골프의 승패 또한 골퍼의 핸디캡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로(Low) 핸디 골퍼가 하이(High) 핸디 골퍼의 제물(祭物)이 되는 경우가 있고, 특정 상대만 만나면 영락없이 돈을 잃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골프용어에 OB(Out of Bounds)가 있다. 공이 필드 밖으로 나간 경우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OB’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대법원이 거액의 내기 골프에 일관되게 도박죄를 인정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이 항소하겠다고 하니 상급심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골프에서는 OB가 나면 2벌타(罰打)를 먹는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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