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호]策士구하기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30분


한나라당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솔직히 공허하게 들린다. 걱정만 하지, 처방을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여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쯤 누가 모르나. “중도 보수로 가야 한다”는 말도 이젠 진부하다. 극심한 이념의 혼재(混在) 속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거니와,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모두 부질없는 말장난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면 발상을 한번 바꿔보자.

결국은 사람이다. 당을 위기에서 구할 인재(人材)를 찾아야 한다. 당에 사람이 넘치는데 웬 인재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나 여기서 말하는 ‘인재’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지모(智謀)를 가진 전략가를 뜻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줘서 그렇지 책사(策士)나 방략가(方略家)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 한 대목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싶다.

유비의 책사 공명이 강동의 손권을 찾아가 함께 조조의 백만 대군과 맞서 싸우자고 한다. 손권은 공명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강동의 인걸들을 장막 안에 모아놓고 공명과 대적하게 한다. 설전이 벌어지면서 공명은 “도대체 무슨 경전을 읽었느냐. 참된 학문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공세를 받는다. 이에 공명은 “소인(小人)이란 글로는 비록 천(千)자를 써내려가도 가슴속에는 한 가지 계책도 없는 무리”라며 이들의 공소(空疎) 공허한 학문과 이론을 비웃는다. 가슴속에 한 가지 계책도 없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든 만 권의 장서를 뽐낸다는 통렬한 조소였던 것이다.

‘가슴속에 한 가지 계책을 가진’ 바로 그런 인재가 한나라당에 필요하다. 1997년 대선 무렵에 있었던 일화 하나도 설명에 도움이 된다. 어느 당의 유력한 경선 후보가 자신의 브레인이 되어줄 교수와 지식인들을 소집했다. 한 언론계 인사도 출정식을 겸한 그 자리에 초청받았다. 가보니 30여 명의 참석자 중 박사, 그것도 미국 박사가 아닌 사람은 자기뿐이어서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그 많은 브레인 중에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 후보는 경선에서 탈락했다.

한나라당 안에도, 그리고 밖에도 분명 이 시대의 복룡과 봉추가 있을 것이다. 대안(代案) 정당이 되기 위해 정책도 개발하고 지지층도 넓혀야겠지만 더 급한 건 이런 인재를 찾아내는 일이다. 지식보다 지혜가, 지혜보다 영감(靈感)이 앞선다. 영감은 신이 내리는 특별한 선물이어서 영감을 지닌 책사는 한 시대에 불과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장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가 당에 돌아오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박근혜 대표와의 3파전은 이런 표현을 써서 안됐지만 ‘대선 흥행’의 성공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세 사람은 각각 한 세대에 대한 서로 다른 압축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국민의 관심을 붙들고 갈 수 있는 책사를 구해야 한다. 마침 당 혁신추진위원회도 출범했으니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자세로 나서 볼 때다. 야당이 강해야 정치도 발전한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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