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재산공개의 학습효과

  • 입력 2005년 3월 2일 18시 12분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몇몇 공직자가 재산 공개로 곤욕을 치렀다. 이런저런 해명을 해야 했고, 해명이 석연치 않아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렇게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더러 나와야 여러 사람한테 좋다. 확실하게 간접 ‘학습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공직자 재산 등록과 공개는 공직을 이용한 재산 취득을 규제하고 부당한 재산 증식을 못하도록 하자는 게 기본 취지이다. 일반직 공무원을 기준으로 할 때 등록은 4급, 공개는 1급 이상부터이니 대상자가 꽤 많은 편이다.

재산 등록은 1983년부터, 공개는 1993년부터 해 왔다. 그동안 대상자 본인으로 하여금 처신을 조심하게 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봤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효과는 앞으로 등록 및 공개를 해야 할 공직자나 장차 공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한 공무원(3급)은 “재산이 언론에 공개돼 망신당하는 사람을 보니 딱히 문제가 되는 재산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슴이 뜨끔해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집이나 땅을 샀는데 갑자기 값이 크게 올랐다는 얘기가 나오면 “당신은 장관 못 하겠네”라는 농담까지 오간다고 한다.

요즘은 개방형 공직이 많아 민간인의 공직 진출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또 사회지도층의 경우 언제 공직에 부름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상당한 경각심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좀 더 확실하게 효과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간간이 거론되긴 했지만 몇 가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까지가 등록 대상이지만 독립적인 생계 능력이 있는 직계 존비속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성인이 된 자식이나 부모의 재산까지 의무적으로 등록하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이 있긴 하지만 이런 예외 조항을 둠으로써 ‘부당한 재산’을 감출 수 있는 소지가 없지 않다.

또 재산의 목록 및 액수와 함께 재산 취득 경위와 변동 사유를 적도록 하고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자금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적시된 내용만으론 재산 취득 과정에 불법 행위나 공직을 남용한 사례가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등록 재산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심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누락된 재산이 있는지와 일부 투기제한지역에서의 부동산 매매 정도만 찾아내는 게 고작이고 신고 내용이 정확한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재산이 있는지는 가려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상자가 너무 많아 이런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면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만을 대상으로라도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에서 애써 문제가 되는 재산을 찾아내기 전에 정부가 먼저 그런 부분을 확인해 조치하고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왕 학습효과를 보게 하려면 좀 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진녕 사회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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