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박지영]법도 음악도 사회의 윤활유

  • 입력 2005년 3월 20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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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더 어려워요, 법이 더 어려워요?”

20년 동안 음악을, 그 후 10년 동안 법을 하며 현재 변호사로 살고 있는 내게 주위에서 수도 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어찌 음악과 법이 그 난이(難易)에 따른 위계화가 가능하고 필요할까. 일단 무엇이든 줄을 세워 등수를 매기고 보는 습성에서 나온 질문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예술은 시대정신이 반영된 예술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사상을 선도한다.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영향력의 특성상 독창성과 실험성이 우선시된다.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접할 수 있는 14세기 음악도 역사 속에서 처음 대두될 때에는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라는 이름으로 낯설게 대중에게 다가갔다. 예술의 구현 속도가 대중의 인지 속도보다 빠르다는 뜻이다.

반면 법은 인간의 일정한 행태가 반복되어 축적된 후 이에 대한 규율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제도화된 권력에 의한 검증과 다수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독창성보다는 공정성이, 실험성보다는 안정성이 요구된다. 또한 검증과 합의의 도출 과정에 시간이 걸리므로 다분히 사후적이다.

법은 예술과 달라 그 향유 주체가 선별적이지 않다. 법의 효력은 누구에게나 미친다. 따라서 법 창조와 법 집행의 속도가 대중의 인지 속도보다 빠르면 큰일이다. 그랬다가는 법에 희생되거나 법을 악용하는 이가 생길 공산이 크다.

예술과 법은 이렇듯 한 사회의 앞과 뒤에서 그 사회를 이끌고 밀어 주며 지탱하는 ‘같은’ 나무를 이루는 ‘다른’ 가지이다. 법과 음악을 ‘쉽고 어려움’으로 재단할 수 없고, 재단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음악과 법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를 묻는 질문에는 음악과 법이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잘 돌아가게 하는 각기 다른 종류의 윤활유라는, 음악과 법의 도구(tool)적 측면이 도외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위 질문은 음악과 법 자체를 개인적 성공의 획득 내지 삶의 목표로 상정했을 때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그 쟁취 여부가 인생 최대의 관심사이니 ‘쉬운지 어려운지’가 궁금할밖에.

열아홉 살에 림프샘암에 걸려 5세부터 15년을 쳐 온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던 필자로서는 음악이 삶의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레슨비를 톡톡히 치렀다. 그리고는 음악이든 법이든, 제3의 무엇이든 간에 그 도구로서의 유용성에 눈을 뜨고 음악과 법이라는 각기 ‘다른’ 도구가 지향하는 ‘같은’ 목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음악과 법의 작용기제에 대해서도 좀 더 풍요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위 질문을 선해(善解)하여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를 찾고 있는데 법과 음악 중 어느 윤활유가 더 좋으냐에 대해 굳이 대답해 보자면 이렇다. ‘어느 윤활유를 선택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특정 윤활유를 쟁취한 다음(Next)에, 그 윤활유를 가지고 톱니바퀴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박지영 변호사

:약력:

1970년생. 서울대 음악대 및 법과대를 졸업했으며 석사과정(민법 전공)을 수료했다. 법무법인 로고스 소속 변호사이며 동아방송대에 출강(음악이론)하고 있다. 저서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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