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0년 日 구로사와 감독 출생

  • 입력 2005년 3월 22일 18시 33분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의 영화로 세계영화사에 우뚝 선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1998) 감독이 1910년 3월 23일 태어났다.

구로사와는 스티븐 스필버그 등 미국의 대표적 감독들이 ‘스승’으로 꼽던 이였고, 1992년 영국의 저명한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선정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10명’에 오른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스필버그는 그를 ‘영상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렀지만 구로사와 자신은 “예술가보다 영화의 장인(匠人)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하던 마에스트로였다.

그는 화가를 꿈꾸다 26세에 영화사에 들어갔고 7년 후 ‘스가타 산시로’로 데뷔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41세에 ‘라쇼몽’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으면서부터. 일본적 배경과 서구적 스타일을 뒤섞고 미세한 심리묘사, 보편적 주제를 담은 이 영화로 아시아 영화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늘 스태프에게 “뭐든 어리석을 정도로 열심히 하면 재미있어지고, 재미있어지면 무의식중에 노력하게 되는데 그것이 진짜 노력”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구로사와 팀’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마지막 작품 ‘마다다요’에서 연회 장면을 찍던 날, 구로사와는 아침 일찍 몇몇 사람이 아주 높은 세트의 천장을 닦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먹는 장면이라서 배우들이 안심하고 먹도록 세트장 먼지를 청소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일본 영화산업이 기울고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자 한때 자살을 시도할 만큼 좌절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칠순에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탄 ‘가케무샤’로 재기했다. 그리고 83세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란’ ‘꿈’ 등 걸작을 빚어냈다.

80세에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타던 날, 구로사와는 수상 소감에서 “나는 아직 영화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대한 열심히 이 길을 가서 영화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세계를 이룩한 거장이 노년에 이르러서도 ‘영화의 길’을 고심하다니…. 그의 영화를 모르는 이들도 되새겨 볼 ‘스승’의 자세라 할 만하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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