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0년 푸틴 러 대통령 당선

  • 입력 2005년 3월 25일 18시 39분


“러시아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늘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내가 그 길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됩니다.”

1999년 12월 31일. 20세기의 마지막 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사임 연설과 함께 ‘8년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차기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1%. 경제 실패와 만연한 부패가 낳은 부끄러운 성적표였다.

그는 1991년 군부쿠데타에 대항하는 ‘탱크 위에서의 시위’를 벌여 러시아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래서 국민적 영웅이 됐고 대통령도 됐다. 그러나 ‘러시아를 강한 민주국가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와 희망은 그의 임기 중에 실현되지 않았다.

그로서는 “국민의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하고 후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등 뒤로 물러서는 것이 러시아를 과거로 돌리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옛 소련 체제의 부활을 노래하는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방과 러시아 언론인들도 “주가노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러시아 자유언론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옐친의 조기 퇴장은 그의 의도대로 권력전선에서 푸틴의 전면 등장을 가져 왔다. 푸틴은 대통령직무대행을 맡게 됐고, 총리 취임 직후인 1999년 8월 2%에 불과하던 그의 지지율은 2000년 3월엔 54%까지 치솟았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유고 때문에 대선일이 예정(6월)보다 3개월 앞당겨진 것도 푸틴을 크게 도왔다.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3월 26일 실시된 선거에서 푸틴은 52.9%를 득표해 주가노프(29.2%)를 압도했다.

그로부터 4년간 푸틴의 ‘강한 러시아’ 노선은 침몰하던 대국의 자긍심을 살려냈다. 2004년 대선에서 그가 얻은 71.3%의 득표율이 ‘푸틴의 힘’을 보여 줬다.

그러나 역사는 ‘국민의 전폭적 지지=민주 권력’이란 등식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님을 가르쳐 왔다. 푸틴은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사를 강제 폐쇄하며 언론통제를 강화해 왔다. 이른바 ‘3선(選)개헌’을 단행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러시아 민주주의의 물꼬를 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최근 “푸틴 정부의 언론 통제 때문에 TV를 보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러시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푸틴의 러시아는 옐친의 기대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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