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83) 추기경은 54년째 오롯이 성직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고 오랜 기간 성직의 최고 지위에 있어 왔다. 그러나 그는 성직자이기 전에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이 시대의 큰 어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 13세에 예비신학교에 들어간 이후 18년 만인 1951년 사제서품을 받을 때까지 ‘장사를 해볼까, 결혼을 해볼까’ 회의가 많았다고 한다. 마산교구장이 된 후 2년 만에 주교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참인 자신에게 서울대교구장이 맡겨졌을 때 그는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다시 이듬해 추기경이 되었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길은 없다’는 막막함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많은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심리적 중압감과 고독감 때문에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다는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시절 이후 지금까지 의사가 처방해 준 불면증 치료약에 의지해 잠들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1998년 주교 직무에서 은퇴하면서 조용한 시골 성당으로 갈까 고민했으나 귀족생활이 몸에 밴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는 그는 올해 초 회고록 발간 직후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에게 “가난한 자가 되고 싶다고 기도하던 내가 몸은 그렇지 않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모순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높은 자리란 때로는 창살 없는 감옥과 같다. 추기경도 때로 감옥을 나와 혼자 모자를 눌러 쓴 채 등산을 하지만 그때조차도 등산객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곡절과 혼돈의 현대사 한가운데서 대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용기 있는 신앙인 김 추기경. 그러나 그는 시국발언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고대해 왔다.
‘젊은 게 곧 권력’이 되어 버린 듯 온통 젊음 예찬뿐인 요즘 세상에서 팔십 평생을 성찰과 반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 추기경은 이 시대의 보배처럼 생각해야 할 큰 어른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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