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벽은 훔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데 습관적으로 실패하는 성격장애다. 이들은 도둑질을 하기 전에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고 범행에 성공한 뒤에는 만족감을 맛본다. 이런 도둑 중에는 훔친 물건을 버리거나 비밀리에 돌려주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살 돈이 충분히 있는데도 꼭 훔쳐야 직성이 풀리는 도둑도 있다. 조세형이 대도(大盜)로 통하던 시절 훔친 보석을 재가공해 비싼 값에 팔아 흥청망청 쓴 걸 보면 정서장애형이라기보다는 절도중독에 가까운 것 같다.
▷중독자는 손을 씻었다가도 언젠가는 절도 충동에 다시 무릎을 꿇는다. 한때 고관대작과 재벌 집을 털어 대도로 ‘대접받던’ 조세형이 67세의 늙고 초라한 좀도둑이 돼 빈 집에서 손목시계를 훔치다가 붙잡혔다. 보육원과 소년원을 전전하며 성장한 조세형은 대도가 되기 전까지 ‘감옥 별’을 13개 달았다. 도둑질의 쾌락은 짧고 징역살이는 길었다. 국내에서 징역 31년, 일본에서 3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잠깐 밖에 나와 있을 때는 도둑질로 산 인생이다.
▷조세형은 달리기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다. 그런 재주를 평생 도둑질에 써먹었다. 재판부에 낸 탄원서가 멋진 글이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탈주를 감행하고 형을 줄여달라고 탄원서를 쓰는 걸 보면 징역살이는 도둑질만큼 쾌락을 주지 못한 모양이다. 대도 의도(義盜)는 허상이었음이 이번 좀도둑질로 확인됐다. 그는 어려서 도둑질을 배워 평생 도둑질을 한 습관성 절도범일 뿐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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