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46년 스페인 화가 고야 출생

  • 입력 2005년 3월 29일 18시 58분


벌거벗은 여성이 침대에 누워있다. 남자를 갈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뻔뻔스럽고 무례할 정도로 도발적인 눈빛.

남성들은 그 눈빛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모른 척 시선을 돌리려 해도 슬금슬금 다시 눈이 간다.

1800년대 초반 프란시스코 고야의 ‘나체의 마하’가 발표되자 스페인은 발칵 뒤집혔다. 나체화가 금지됐던 시기에 치모(恥毛)까지 그려 놓았으니….

“법정에 출두해 음란한 그림을 어떤 목적으로 그렸는지 답변하시오.”

감춰뒀던 본능이 까발려지는 건 그토록 두려운 일이었을까. 1815년 종교재판소는 급기야 고야를 법정에 세운다. 엄숙주의가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던 시기였다.

고야는 1746년 3월 30일 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의 벽촌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처음 붓을 잡았지만 왕립 미술아카데미 선발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태생은 비천했고 그림 실력 역시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결혼을 통해 상류층에 끈이 닿았고 궁정화가로 순탄한 삶을 살았다. 출세지향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왕가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던 그의 화폭에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도제(徒弟)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였다.

여전히 인물화였지만 팔다리가 잘리거나 총에 맞아 피가 흥건한 사람이 등장했다. 어딘지 모르게 음울하고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괴한 이미지가 가득했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 언덕의 총살’ 같은 그림은 한국에선 한동안 금기시될 정도로 메시지가 강했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기(反旗), 궁정과 교회가 아닌 현실을 그리려는 저항적 사고의 산물…. 그의 그림에 대해 후세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화비평가 이반 나겔은 (고야의 그림에서) “옷 벗겨짐은 인간성 상실과 존엄성의 손상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고야는 법정에서 “왜 마하를 그렸느냐”는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았다. 대신 똑같은 포즈로 ‘옷을 입은 마하’를 그려 내놓았다. 그의 일생을 관통한 것은 엄숙함에 대한 야유와 비판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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