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일 청산 굿판’ 거부한 연세대 학생회

  • 입력 2005년 3월 30일 18시 46분


요즘 대학가 일각에서 친일 청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윤한울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백낙준 초대총장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소수 학생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그는 “어떻게 과거 역사 속의 한 인물에 대해 일방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 더디더라도 신중하게, 나중에 후회할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는 게 나와 총학생회의 뜻”이라고 말했다. 낡은 운동권식(式)이 아닌, 지성적이고 학문적인 접근 자세를 보면서 선배세대 운동권보다 젊지만 성숙한 모습을 느끼게 된다. 윤 회장은 ‘막연한 반일감정을 토대로 한 여론몰이’를 경계했다고 한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28일 자체조사 결과라며 ‘친일교수’ 10명의 명단을 공표했다. 이 학생회가 ‘친일교수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한 것은 지난 11일이다. 보름 남짓 사이에 무슨 자료를 근거로 어떤 방식의 ‘자체조사’를 했는지 알고 싶다. 전인(前人)들의 궤적을 일도양단(一刀兩斷)식으로 선뜻 판단해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이들 학생이 사회에 나와 프로의 직업세계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사회를 이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편향된 연구기관이나 학자들의 주장을 반면(反面)에 대한 검증 노력도, 여과할 능력도 없이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빨아들여 확대재생산하는 행태는 고뇌할 줄 아는 지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세상에는 매사를 ‘선악의 대결’로 틀 지우면서 반대편을 악(惡)으로 매도함으로써 자신을 선(善) 쪽에 편입시키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다면을 많이 경험하고 살핀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을 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위선(僞善)도 보이는 법이다.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들의 잘잘못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진지한 자기성찰과 사실 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적 접근이 우선돼야 마땅하다. 이는 공과(功過)를 떠나 사자(死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해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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