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호리에 다카후미

  • 입력 2005년 4월 19일 18시 08분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취미를 ‘돈 모으기’라고 적었다. 열차 여행을 하면 스치는 역 열댓 개는 거침없이 기억해 낸다. 시험 답안지는 10분 안팎에 내지만 100점만 받는다. 학과 공부는 별로 않고 백과사전 읽기를 즐기는 아이. 중1 때부터 돈벌이를 위해 신문배달을 하고, 자전거로 40km를 통학했다. 그 학교는 손정의(孫正義) 씨도 다녔던 후쿠오카의 구루메중학교다.

▷일본의 후지TV 장악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호리에 다카후미(32) 사장 얘기다. 중고교 시절 공부와 담을 쌓아 도쿄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담임도 친구도 코웃음 쳤다. 반년의 반짝 노력으로 도쿄대 문학부에 들어간다. 그리곤 다시 공부를 접고 공짜 여행만 다녔다. 학생증만 내보이면 어디서나 거저 태워 주었다. 마침내 중퇴. “도쿄대는 들어간 것만으로 충분했다. 졸업까지 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는 이유였다.

▷PC에 빠져 있다가 3년 전 라이브도어라는 인터넷 포털을 사들였다. 지금은 온라인증권사 등 31개 회사를 거느리고 연간 300억 엔의 매출을 올리는 인터넷그룹 총수다. 넥타이는 안 맨다. 티셔츠에 윗도리만 걸친 채 달려가며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이 단골 이미지다. 회사에는 사장실이 없다. 창가의 직원 자리 옆에 책상 하나 놓고 일한다.

▷말도 거칠다.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다.” “미디어는 결국 인터넷에 다 모일 것이므로 신문 방송은 어떻게 없애느냐만 문제다.” 호리에 씨는 후지TV 경영권을 겨냥한 매수 공방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두고 화해했다. 후지TV가 손 씨까지 내세워 방어에 나서자 결국 적(敵)과의 전략적 제휴를 택했다. 인터넷과 방송의 융합도 공동 추진키로 했다. 세평(世評)은 두 갈래다. 이단(異端)이라는 비난과 정보기술(IT)시대의 선구자라는 찬사. 노년층은 찌푸리고, 젊은 층은 손뼉을 친다. 분명한 것은 호리에 씨가 일본의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점이다. 고령(高齡) 일본에 등장한 ‘터미네이터’라고나 할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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