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유승]BT-NT-IT 융합연구 절실하다

  • 입력 2005년 4월 19일 18시 08분


지난 15년간 진행된 한국 과학 기술의 발전상은 경이로울 정도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 수행된 연구가 국제학술지에 실리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최고 수준의 국제학술지인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에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이 실리기 시작해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안겨 주곤 했다. 이제는 이러한 세계적 우수 논문의 발표 자체가 더는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 과학 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해외에서도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진국 과학자들이 한국인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기를 원하거나, 우리의 앞선 기술과 연구 재료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해외 유수 연구소에서도 아이디어와 정보의 교환을 위해 인력 교류를 희망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그간 정부의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예산 확대와 과학기술인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국민의 폭넓은 성원과 관심이 결합된 결과다. 이제 상당수 국내 과학자들이 개별적인 경쟁력에서 볼 때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고 또 널리 인정받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다음 단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 연구자의 업적은 대개 그 연구자가 이제까지 습득한 지식과 경험 체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미래의 과학 기술을 이끌어 갈 창의적 지식의 창출은 기존 연구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질문 자체를 새로이 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종래 기술의 연장이 아닌 혁신적인 신기술이 태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연구 체계와 접근법이 요구되는데, 그간 많이 거론돼 온 것이 ‘학제(學際) 간 융합 연구’다. 학제 간 융합 연구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사고를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융합 연구는 실제로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 또 기존에도 협력 연구가 크게 권장돼 왔으나 단일 학제 위주의 공동 연구에 초점을 맞추거나 여러 연구팀을 병렬적으로 구성해 진정한 의미의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제적 틀을 포함하면서 ‘응집된 연구 체계’가 필요한데 이것이 탁월성 전문 연구 집단이다. 여기에는 뛰어난 비전과 연구 역량이 검증된 리더가 있어야 하고 그 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틀을 가진 우수한 연구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응집된 학제 그룹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러한 학제 전문 연구 집단이 융성한 발전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기술 돌파를 이끌어 내며 우리 고유의 강점 분야를 육성하고 세계적 기술 혁신 사례를 창출해야 한다. 또 학제 전문 그룹을 매개로 연구 주체 간 장벽을 초월한 새로운 인력 교류와 협력 모델을 발굴하고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학제 간 응집된 연구 체계의 구성을 위해 국책 연구소가 앞장서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긴요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도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의 조직적 지원을 위해 세계적 탁월성에 기반을 둔 전문 연구 집단의 육성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학제 전문 연구 집단이 우리의 과학 기술력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유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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