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핵심 당사자인 부동산개발업자 전대월(全大月) 하이앤드 대표가 26일 긴급체포됨에 따라 검찰 수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사업성 있었다?=전 씨와 함께 철도청에 유전사업을 제안한 지질학자 허문석(許文錫) 씨는 왕 본부장과 이미 2, 3년 전 인도네시아 철광개발사업 등으로 얽혀 있는 관계. 특히 두 사람은 공무원들과 개인사업가들의 사적 친목모임인 ‘두목회(매월 두 번째 목요일에 만난다는 의미)’ 등을 통해서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왕 본부장은 철도청의 유전사업 참여가 결정된 지난해 8월 12일 내부 회의에서 이 사업에 세계적인 석유회사인 미국의 엑손, 텍사코, 영국의 BP사 등이 직접 지분 참여(30%)한다고 보고했다. 또 한국석유공사가 실사를 거쳐 수익성이 낮아 포기한 사업임에도 그는 전 씨 등과의 지분 다툼 때문에 석유공사가 불참했다고 허위 보고했다.
왕 본부장은 사업이 무산된 지난해 11월 15일 이후 최근까지도 여전히 사업성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공사가 20일 국회에 제출한 ‘러시아 석유개발 회사의 영국 BP사 인수 확인’ 내용도 결국 왕 본부장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는 게 철도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철도공사의 국회 보고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지 1주일 후에 이뤄졌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국회 보고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BP사는 문제의 러시아 유전개발 회사를 인수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 본부장 또는 철도공사가 국회를 상대로 중대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재확인을 요청하자 “담당자들이 모두 검찰에 나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연루설 실체 드러나나=검찰이 전 씨를 상대로 우선 규명해야 할 대목은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정치권 개입설의 실체다.
전 씨는 지난해 6, 7월경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을 찾아가 유전사업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의원은 전 씨에게 이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허 씨의 전화번호를 건네줬다. 전 씨는 이기명(李基明·이 의원 후원회장) 씨의 고교 동창인 허 씨와 함께 이 사업을 철도청에 제안했다.
이 과정에 이 의원이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게 급선무인데 전 씨는 26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애초 사업을 구상했던 권광진(權光鎭) 쿡에너지 대표가 주장했던 이 의원 관련설을 부인했다.
우리은행 대출과 산업자원부의 유전사업 계획서 처리 과정 등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는지도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련자들이 사업 추진 일정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에 맞추려 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둘러싼 의혹도 진위가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씨와 왕 본부장, 왕 본부장과 허 씨 간의 석연치 않은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이 무산된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외에 또 다른 사업을 벌여 놓은 게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왕 본부장과 허 씨는 이미 2, 3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철광개발 사업을 같이 했고 개인적 채권 채무 관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기본적으로는 전 씨 등이 중심이 돼 벌인 ‘허황된 투자행각’ 또는 ‘단순 사기성 사건’이며 여기에 이들과 정치권 실세들의 친분관계를 알고 있는 관련 기관의 간부들이 적극적인 도움을 베풀어 문제가 더 심각하게 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자진출두와 자수의 차이:
자진 출두는 수사기관의 출석 요청에 응해 스스로 검찰이나 경찰에 나가서 조사를 받는 것이다. 자수(自首)는 범인이 스스로 자기의 범죄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잠적했다 26일 스스로 서울중앙지검에 나온 전대월 씨의 경우 ‘자진 출두’했다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전 씨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스스로 인정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어 ‘자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형법은 자수를 할 경우 형량을 법정형의 절반까지 깎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를 부인하다가 자백을 한 경우에도 ‘자수’로 인정할 수 있는지 모호해 자수 감경은 거물 피고인의 형량을 깎아 주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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