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자 경포는 왠지 꺼림칙했다. 패왕이 팽성에 원군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때가 맞지 않았다.
‘나를 돌아 앞뒤에서 협격하려는 것인가….’
그러면서 더욱 세밀하게 초군의 움직임을 살피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패왕의 본진이 호릉(胡陵)에 이르렀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풍읍(豊邑) 성안에서 이틀을 느긋하게 쉰 경포가 장졸들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성벽이 허술한 성안에서 싸우다가 적의 대군에게 에워싸이면 꼼짝없이 성안에 갇혀있다 당하고 만다. 풍읍은 성벽이 미덥지 못해 성을 나가 싸울 것이니, 과인이 이른 대로 모두 몸을 가볍게 하고 치중을 줄여 적의 추격을 떨쳐버리기 쉽게 하라. 부근 알맞은 곳을 골라 매복했다가 적에게 일격을 가한 뒤 성벽이 두텁고 높은 하읍(下邑)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하읍도 지키기 어려우면 망산과 탕산 사이로 달아나 숨었다가 때를 보아 다시 치고 나오면 된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풍읍을 버렸다.
한편 패왕은 용저의 남행(南行)을 감춰주기 위해 대군을 더욱 요란스레 이끌고 호릉을 떠났다. 유방의 고향인 패현 풍읍에 이르니, 거기 있다던 경포의 군사들은 이미 떠나고 용저가 보낸 전령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용저 장군께서 아무 일없이 율현을 지나 구강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닷새면 구강에 이를 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한 번 더 팽성에 사자를 보내 항성을 재촉했다.
“팽성의 원군도 닷새 안으로 구강에 이르러 용저와 손발을 맞추도록 하라.”
그리고 풍읍 성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은 채 경포를 뒤쫓았다. 풍읍 사람들을 불러 경포의 군사들이 간 곳을 알아보게 하니 대강 하읍 쪽으로 달아난 듯했다.
“모두 하읍으로 가자. 경포는 하읍의 성벽을 믿고 그 안에서 버텨볼 작정인 것 같다. 독안에 든 쥐새끼가 따로 있겠느냐?”
항우가 그러면서 군사를 몰아 하읍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하읍에서 북쪽으로 30리쯤 되는 골짜기를 지날 때였다. 먼저 골짜기를 지난 패왕의 전군(前軍)과 중군(中軍)이 후미까지 다 빠져 나오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골짜기 안에서 함성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무슨 일이냐?”
중군에 싸여 골짜기를 나온 패왕이 그렇게 묻자 급히 뒤로 달려가 본 부장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경포의 군사들입니다. 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우리 후군(後軍)과 허약한 치중부대를 들이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놀란 패왕이 급히 후군에게 원병을 보냈으나 골짜기가 좁아 잘 되지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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