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인 40, 50대 남자는 이따금 서글퍼질 때가 있다. 마누라가 밥을 제때 챙겨 주지 않거나 아이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곤 한다. 늦게 귀가해도 아랫목이나 이불 속에 밥이 묻혀 있던 시절의 추억과 아무리 술에 취해 들어와도 속 버리지 말라며 밥상을 차려 내오시던 어머니가…. 가난했지만 가족 간의 정은 훨씬 부자였던 시절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이따금 가출(家出)의 충동도 느낀다. 자식들의 요구가 너무하다고 생각되거나 아내와 아이들이 투합해 가장을 ‘왕따’로 만들어 버릴 때다. 직장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아이들이 어쩌다 제 방에서 나와 인사라도 하면 오히려 황송할 정도가 아닌가. 자식이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고 하지만, 가장 또한 자식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가슴에 피멍이 들 때가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나도 ‘나의 어린이날’을 맞고 싶다. 오늘 어린이날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한테 가서 하룻밤 자고 오고 싶다. 쉰 살이 된 자식도 어머니에겐 한갓 철없는 어린이 아닌가. 아내가 아무리 정성들여 식탁을 차린들 어머니가 이제 막 내오신 조촐한 밥상에 비하랴. 어머니한테 길들여진 아들의 입맛은 아무리 솜씨 좋은 아내도 빼앗을 수 없다. 칠순, 팔순 노모도 어린이날에는 머리가 허옇게 벗겨진 자식을 걱정하며 그리워한다고 한다. 부모는 늙어 죽도록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은 끝까지 부모를 괴롭히는 존재로구나.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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