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호적에 박 씨는 ‘처(妻)’로 올라 있지만 김 씨의 두 아이 ‘모(母)’에는 박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랬다. 일년 전 이맘때 김 씨의 아들(당시 초교 6년)은 박 씨에게 ‘아줌마, 혼자서 외로우면 저희 집에 와서 같이 살아요’하는 e메일을 보내왔다. 김 씨는 박 씨에게 ‘간접적이긴 하지만 청혼 받은 거 아냐’하고 웃었다.
박 씨는 약 9년 전 남편과 헤어졌다. 마흔이 넘자 홀로 사는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중매로 낯선 사람을 만나자니 겁도 나던 터였다. 동창회를 통해 김씨 역시 약 5년 전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김 씨의 딸(당시 고교 1년)이 제동을 걸었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박 씨는 지난해 10월 김 씨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너무 놀랐다고 한다. 김 씨는 ‘돈 벌어오는 기계’였고, 딸아이는 야간자율학습하느라, 아들 녀석은 PC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딸애는 박 씨에게 반발했다. 박 씨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동생에게 ‘저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냐’ 하고 야단을 쳤다. 박 씨는 딸의 담임교사를 면담하고 돌아와 “내 딸이 다른 사람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는다면 참 슬플 거야”하고 달랬다. 생모에 대해서는 “만나도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 말에 딸애는 생기를 얻는 듯했다. 박 씨가 나서 딸애가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허가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딸애에게 박 씨는 여전히 아줌마였다.
그렇다고 아들이 수월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여전히 PC방을 전전했고 가족들의 돈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엉망으로 키워놓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학교 입학 반편성 고사를 앞두고 일이 터졌다. 오전 1시에 들어온 아이를 보고 남편과 딸애는 ‘맘대로 하라’며 각기 방으로 들어갔다. “낼 모레가 시험인데 PC방이 말이 되느냐”는 말에 아이는 “새엄마는 원래 야단 안 치는데”하고 맞섰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새 엄마 맛 좀 볼래’하면서 회초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어 산소호흡기를 쓰고 병원으로 실려 갔죠. 그날 딸애는 동생에게 ‘엄마 죽으면 책임 질 거냐. 또 셋이 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치더군요.”
그날 이후 아들이 PC방 출입을 중단했다. 딸애는 ‘엄마’하고 부르지는 않지만 “아빠보다 엄마 생각이 옳아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이 집에 들어온 이상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잘못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니까요.”
김 씨 부부는 이제 막 가족을 꾸렸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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