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원자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 법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정책의 출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에너지 자원이 곤궁한 이 나라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환경단체의 주장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법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과정에 주민투표를 필수 과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는 대중민주주의 사회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취약점이 된다. 주민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민들이 대부분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원자력에 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공의 이익보다 지역이기주의에 몰두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고, 반지성적인 사람들에 의한 폭력적인 분위기가 이성적인 토론을 어렵게 한다.
20년 동안 방폐장 찾기에 정부가 실패한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정부를 계속 구석으로 몰기만 한다면 국민들이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단체가 반대하면 신규 원전 건설을 유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도 하나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을 건설하여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을 국민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미국 노르웨이의 고준위 핵 폐기장 건설과정을 지켜보면서 10년, 15년을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단체 역시 1960년대 몇 군데 미국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폐쇄된 것을 마치 오늘의 사실처럼 오도해서도 안 된다. 그때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안전법규가 만들어지지 않아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이 있었지만, 관련법이 만들어진 후로는 어느 처분장도 문을 닫지 않았다.
미국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A, B, C로 분류해서 어떻게 처리하고, 운반하고, 처분할 것인지 국민과 후보지역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구체적인 안전규제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야 한다.
정부는 유치지역에 주는 특별지원금과 반입 수수료,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홍보하지만 환경단체는 유치지역의 경제적 이익이 미흡하며 오히려 손실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내 집 옆에는 안 된다는 국민의 생각이 원전시설의 사회적 수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진이 2004년 조사한 결과 국민의 25%만이 그들의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을 찬성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35∼40%가 현재 유보적이다. 앞으로 긍정적인 답변이 절반을 넘기려면 과학자, 공학자, 정부가 시민들을 이해시켜야 가능하다고 본다. 평범한 시민들도 과학자 수준의 인식을 갖게 된다면 20년 동안 끌어온 이 나라의 어려운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최연홍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수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