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자유라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하면, 이 말이 주는 무게가 새삼스럽다.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하면 서도 통제되어야 할 이런저런 상황까지도 생각하게 하는 이 말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했다.
이제는 고전이 된 밀의 ‘자유론(On Liberty)’은 특히 ‘생각의 자유’를 주장하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그 생각이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해도 침묵하게 하면 옳은 것과 대비시켜 진리를 드러낼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밀이 ‘자유’에 천착하게 된 것은 대량화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다. 1806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산업혁명을 경험하면서 생산에 이어 교통, 교육 등 모든 것이 대중, 대량화되면 획일화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이면서 참된 행복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개별성’이 설 자리를 잃는다고 걱정했다. 그는 “인간은 모형대로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inward forces)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지위나 학식이 높다고 무비판적으로 남을 모방하며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최소한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옳건 그르건, 손해를 보거나 실패를 할 때가 있을지라도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다.’
밀은 “개별성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하면 여론과 관습을 앞세운 다수의 횡포가 정치적 탄압보다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집단주의와 획일 문화의 횡포에 익숙한 우리에겐 섬뜩하게 와닿는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성실한 삶을 살았던 밀은 사랑하는 여자가 유부녀였던 탓에 20여 년을 기다려 그녀의 남편이 죽고 난 뒤에야 결혼에 성공한 순정파이기도 했다.
그는 ‘행복을 수중에 넣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 그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지 말고 행복 이외의 다른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라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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