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보물을 맞바꾸자는 대담한 제의는 묵살됐다. 편지의 발신인은 1701년 5월 23일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서 교수대에 올랐다. 살인과 해적 행위가 죄목이었다.
윌리엄 키드(1645?∼1701) 선장. 처형을 앞두고 영국 하원의장에 보낸 이 편지 한 장으로 그는 유명해졌다.
키드는 엄밀한 의미의 해적은 아니었다. 1689년부터 사략선(私掠船)을 탔다. 사략선은 국왕의 허락을 받아 적국의 선박을 포획하는 권리를 가진 개인 소유의 무장 선박.
그러나 키드가 프랑스 깃발을 단 배를 나포해 화물을 가로챈 것이 문제가 됐다. 화물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소유였기 때문. 괘씸죄였을까. 화주였던 영국 정재계 실력자들은 그를 해적으로 몰았다.
현대적인 장비도 없이 인간의 육체와 바람에 의존해 바다를 누비던 시절. 그가 끝까지 임무에 충실했는지, 사욕에 눈이 멀어 해적 행위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 덕분에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전설을 만들어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황금벌레(The Gold Bug)’와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그가 남긴 보물이 모티브였다.
1929년 보물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영국의 한 변호사가 ‘캡틴 윌리엄 키드-어드벤처 갤리 1699’라고 적힌 17세기 참나무 책상을 구한 것. 서랍 속의 숨겨진 홈에서 놋쇠 관(管)에 든 양피지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에는 ‘WK(윌리엄 키드)’라는 이니셜과 ‘1699’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호사가들은 흥분했지만 끝내 보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확천금의 꿈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더욱이 보물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다면, 그 장소를 알려주는 암호로 가득한 지도가 있다면….
키드가 죽은 지 3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수많은 ‘소년’들은 숨겨진 보물을 꿈꾸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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