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윤수]끝없이 속죄하는 獨의 ‘큰 외교’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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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시내 한복판. 우리로 치면 서울 세종로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옆쯤 될 것 같다. 이곳에 나치에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기리는 2711개 추모비가 세워져 5월 10일 공개됐다. 또한 독일 외무부 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복도 한 면에는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강제수용소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역사적인 사진이 걸려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일 터인데 수도의 중심부에 자신의 잘못을 되새기는 추모비를 2760만 유로(약 386억 원)나 되는 정부 예산으로 세우고, 외국에 대해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의 건물에 자국을 대표하는 총리가 무릎을 꿇은 사진을 걸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된다.

물론 이렇다고 해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독일의 젊은이들은 이라크 문제에 대해 외국인과 이야기하기를 꺼릴 정도로 전쟁 문제는 토론 주제에서 금기시된다. 그 속내를 살펴보면 전쟁 이야기를 하면 자연히 나오게 될 “그러면 너희 국가는?”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200년 동안만도 나폴레옹전쟁, 보불전쟁, 1차 및 2차 세계대전 등 커다란 전쟁을 치르면서 깊은 적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독일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프랑스에 대한 신뢰도가 1위를 보일 정도로 지금은 누구보다도 신뢰할 만한 협력관계로 발전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는가? 독일 정부가 나치시대 희생자에게 지급하였던 614억 유로에 이르는 배상금 때문인가. 아니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웠던 추모비나 각종 기념관 때문에 그런 것인가.

이러한 배상금과 기념 건물은 독일인이 느끼는 사죄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이 나치 시대의 과거를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시하려는 태도가 주변국의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 왔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종전 40주년을 기념하는 1985년 연설에서 “기억 없이 화해는 있을 수 없다”며 “역사적인 진실을 과감히 바라보고 독일의 역사로부터 인간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었던가를 배우고 또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은 나치 강제수용소 해방 60주년과 이스라엘 유대인 박물관 개관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과거에 대하여 묵과하고자 하는 자는 현재에 대하여도 눈을 감을 것이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앞으로도 이러한 행위를 하게 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주요 언론에서는 역사를 부정하기보다는 이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제수용소 해방기념, 기념관 건립, 종전 60주년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독일의 만행을 되새기고 있다.

주변 국가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전쟁의 상처가 있었던 장소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독일의 지도자와 주변 국가의 상처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허물을 덮으면서 전범의 위패를 모신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일본의 지도자. 이 차이를 보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로 가기에는 넘어야 할 꽤 높은 장벽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조윤수 주독일 한국대사관 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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