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범진]이승만의 警句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그동안 주눅이 들었던 보수세력은 요즘 오랜만에 어깨를 펴고 있을 것 같다. 지난달 재·보선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0 대 23으로 완패했기 때문이다. 여당이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선거는 유례없는 일이다. 또 재·보선 이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재·보선의 승리가 곧바로 2007년 대통령선거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직도 대선은 2년 6개월이나 남아 있는 데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진보세력이 승리하고 보수세력이 패배한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마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즐겨 쓰던 경구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 광복 후 좌우의 대립 속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이 전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자주 쓰던 말이지만 대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이른바 DJ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를 유보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그를 당에서 쫓아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은 PK(부산 울산 경남)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중요 인물을 쫓아낸 것은 결정적 실책이었다. 그 결과 선거운동도 제대로 못했던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가 PK지역에서 29.5%나 득표했다. 김 전 대통령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이 후보가 PK지역에서 그렇게 많은 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DJP연합을 통해 호남-충청의 지역 연합과 보혁 연합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은 한마디로 한쪽은 분열하고 다른 한쪽은 뭉쳐 싸운 선거로 뭉친 쪽이 이긴 것은 당연한 일었다.

2002년 대선은 약자연합이 강자를 물리친 선거였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의 3파전이 끝까지 갔다면 한나라당의 이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도중 2, 3등을 다투던 노, 정 두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통한 선거연합을 형성하는 바람에 판세가 뒤집히고 말았다. 투표 전날 밤 늦게 정 후보가 노 후보 지지를 철회했지만 이미 굳어진 판세를 바꾸지 못했다. 2002년 대선도 뭉친 쪽이 이긴 선거였다.

2007년 대선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 대통령감으로 현재 각 당에서 부각되고 있는 후보군 외에도 가장 높은 국민적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 호남지역에서 다시 지지세를 회복하고 있는 새천년민주당,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 중인 중부권 신당의 향배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대해 아직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대권 도전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개설해 젊은층과 대화를 시작한 것이 하나의 근거이다. 새천년민주당은 호남지역을 대변하는 무시하지 못할 정치세력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고 중부권 신당은 아직 전망하기 어려우나 지역정당으로 성공한다면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차기 대선에서도 정치세력 간의 합종연횡은 불가피하며 나아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잠재적 우군을 더 많이 확보하여 연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선거연합에 성공하려면 고도의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두 차례 패배하고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누구의 정치적 상상력이 더 컸는가에 따른 결과이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정당은 당 내부의 혁신에 못지않게 잠재적 우군과의 연대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정치적 포용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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