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게임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계속 사회에서 만나게 된다면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게임이 한 번만 행해지고 끝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같은 게임이 반복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배신행위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당하기 마련이다. 인간관계란 바둑 또는 체스만큼이나 ‘경우의 수(number of cases)’가 무궁무진해 언제 어디서 어떤 처지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약속을 하기도 잘 하고, 지키지도 않는 직업인으로는 정치인이 으뜸일 것이다. 못 지킬 줄 뻔히 알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해 놓고 나중에는 상황 논리로 둘러댄다. 그 상황에서는 진실이었다거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변설(辯舌)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약속 위반과 상황 논리의 변명이 거듭되다 보면 유권자들의 응징을 받게 된다. 정치세계에서도 게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산악인 엄홍길 씨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다 숨진 박무택 씨의 시신을 반드시 수습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엄 씨는 1년 뒤 절벽에 매달려 눈사람이 된 박 씨의 시신을 찾아 목숨을 걸고 운구하다가 악천후 때문에 포기하고 임시 돌무덤을 만들어놓고 내려왔다고 한다. 산처럼 무거운 산사나이들의 약속은 이익을 따지는 게임이론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만년설(萬年雪)에 새겨진 산사나이들의 약속은 기온이 바뀌어도 녹아내리지 않는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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