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0달러였다. 아프리카 저개발국이나 아시아 여느 빈국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에 필리핀은 한국보다 훨씬 앞선 나라였다. 필리핀 석사학위를 가진 한국의 대학교수가 으스댈 정도였다.
이후 국민소득은 급증했다. 1969년 200달러, 1977년 1000달러, 1989년 5000달러, 1995년 1만 달러 등으로…. 1966∼1996년에 한국 경제는 연평균 6.8% 성장했다. 30년 동안 이런 고(高)성장을 지속했으니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이 기적을 이루기 위해 숱한 한국인들은 나라 안팎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에 몸을 던졌다. 수출업체 공장에서, 독일 탄광과 병원에서, 중동 건설공사장에서 근로자들이 흘린 땀방울은 강을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베트남전쟁에서 병사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귀중한 외화 자본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어떤가.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2.7%에 그쳤다. 저(低)성장 이유에 대해 한국은행은 “작년 말 담배 사재기로 올해 초 담배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군색한 풀이까지 내놓았다. 8%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은 이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치자. 미국의 3.5%, 일본의 5.3% 성장률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것인가.
한국은 연간 5∼6% 성장해야 일자리 40만 개를 만들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성장지향주의에 대해 ‘성장 중독증’이라며 꼬집지만 일터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을 보고도 그런 한가한 비판이 나올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는 거의 내내 무기력증을 보였다. 정부는 그 원인에 대해 처음엔 고유가, 이라크전쟁 등 대외 요인을 꼽더니 나중엔 투자를 꺼리는 기업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언론 탓을 하기도 했다.
경제정책의 초점을 주로 부동산투기 억제에 두다 보니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심각한 상황은 살피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이라느니, 양자(兩者)를 병행해야 한다느니 하는 공허한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송했다.
뒤늦게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중요함을 깨달았음인지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남이 몇 차례 이뤄졌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는 재계 대표들이 차출돼 갔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 대표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이런 이벤트성 행사는 기업 활동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권력이 기업 위에 군림하는 관행은 변함없고 온갖 규제도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지을 좋은 터를 찾아내도 규제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어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기업이 어디 한둘인가.
대통령은 시장(기업)에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말했지만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그룹 총수들을 한꺼번에 불러 앉힌 것만 봐도 대통령이 여전히 막강한 힘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정경유착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엔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눈에 미운 털이 박힌 기업이라면 세무조사,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 등으로 손을 볼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기업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재정 사업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추는 등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별 효과가 없을 듯하다. 리더십과 신뢰의 뿌리가 흔들리고, 교조적 경제정책이 시행되는 한 백약이 무효 아니랴.
성장 엔진을 다시 강력히 돌려야 한다. 정부의 어설픈 손 대신에 민간의 창의력과 열정으로….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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