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화에 입단해 2군에서 훈련 중인 그의 야구 인생은 활활 타오르려는 순간 장대비를 맞고 사그라진 꼴이다. 신일고 고려대를 거쳐 1995년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 8년 계약으로 입단해 98년 전반기에만 7승(완봉승 3번 포함해 완투승 6번)을 거둔 것이 정점. 이후 끝닿은 데 없는 내리막이었다.
2002년 일본에서 물러난 뒤 국내 무대를 두드렸건만 손을 내미는 구단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혼에다 사업마저 어려워졌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서일까. 조성민은 처음부터 “인터뷰는 딱 20분”이라며 “이미 알려진 내용은 물어보지 말라”고 못 박았다.
키 195cm에 몸무게 100kg이 넘는 그의 체격은 생각보다 더 육중했다. 훈련 시작 18일째지만 아직 웨이트트레이닝과 스트레칭으로 몸만들기만 하고 있다. 한때 심한 부상을 당했고 공백기는 3년에 가깝다.
야구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 메이저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리키 핸더슨은 47세의 나이에도 현역에서 뛰는 이유를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성민에게선 “야구를 즐길 상황은 아니다. 평생 해온 야구의 끝맺음이 좋지 않았다는 후회와 미련 때문에 다시 한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해까지 두 차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해 지명을 못 받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했다. “한 2, 3개월 집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정말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고 절망하다 나중에는 체념했다.”
재기를 자신하느냐고 묻자 그는 “1군 경기에서 뛰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도전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내 자신이 납득할 것이다. 그래서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싫다는 것을 설득해 사진을 찍는 동안 취미를 물었더니 “예전에는 노래하기를 즐겼는데, 지금은 없다. 내 인생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혼잣말을 했다.
구장 밖 넓은 주차장에는 그의 회색빛 BMW325ci 차량 한 대만 서 있었다. 오래 방치한 듯 차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조성민의 마지막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 동안 진심으로 날 위해 준 사람은 없었다. 혼자인 게 차라리 속편하다.”
대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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