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정보]대통령홍보처 된 국정홍보처

  • 입력 2005년 6월 3일 03시 17분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와 관련한 일부 신문의 보도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났다.”

김창호(金蒼浩) 국정홍보처장은 1일 국무회의 브리핑 직후 이렇게 말했다.

김 처장은 “노 대통령이 언론 권력 남용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퇴장한 뒤 개빈 오라일리 WAN 회장이 연설했는데 마치 오라일리 회장이 노 대통령을 (면전에서) 비판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명색이 국가원수인데 서로 예우해 주는 게 의전뿐만 아니라 보도에서도 입장과 생각이 달라도 (예우하는 것이) 적절한 예의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일부 언론의 WAN 대회 보도가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라일리 회장의 (신문법) 발언은 잘못된 사실에 입각한 것이어서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김 처장의 이날 발언은 국정홍보를 총지휘해야 할 사람이 국정홍보가 아니라 대통령 보호에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김 처장은 WAN 회의 참석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신문법을 비판했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그럴까. 내로라하는 언론인들이 누군가 고의로 왜곡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 현실을 비판했다는 것은 억지다.

이번 WAN 총회는 국가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1300여 명은 각국의 여론주도층이다. 국정홍보처가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홍보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언론 탓만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김 처장이 우려했던 국가 이미지 실추는 정작 대통령과 언론관이 같았던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에 의해 저질러졌다. 언노련은 1일 WAN 총회 회의장에 무단으로 들어가 ‘한국신문협회 해체’ 등을 주장한 유인물을 나눠 주려고 해 소란을 빚었다.

중앙일보 기자 시절 유능한 학술전문기자라는 평을 들었던 김 처장이 해야 할 일은 친정인 언론을 욕하고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정직하게 홍보하는 일이다. 메이저 신문의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신문법을 제정했다는 주장이 보편적인 민주주의 기준에서 얼마나 비켜난 것인지 원점부터 되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서정보 문화부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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