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정찬용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에게 서남해안 개발사업(S프로젝트)을 맡으라고 한 사실이 밝혀지자 ‘시스템 부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쓴소리에 대해 청와대는 “정책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제기된다. 새로운 의제에 대해 대통령이 자유롭게 의견을 듣고 관련사항을 주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되받았다. “대통령 지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는 역(逆)훈계였다.
기업에서도 회장이 인사담당 임원을 불러 ‘중국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인사담당 임원에게 이 프로젝트를 직접 맡아 성사(成事)시키라고 지시한다면 그 회사 시스템에는 당장 빨간불이 켜질 것이다.
노 대통령은 본인의 고사(固辭)에도 불구하고 관저에까지 정 씨를 불러 프로젝트를 맡도록 종용했다. 이를 ‘자유로운 의견개진’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집권 초기부터 “참여정부의 1인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해 온 청와대의 공언(公言)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 씨의 커리어는 아무리 뜯어봐도 건설교통이나 개발 분야와 거리가 멀다. 그는 언어학 전공에, 교사와 시민단체 활동을 해 온 사람이다.
최근 대통령직속위원회의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제기된 비판을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광풍(狂風)’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아마추어가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책의 효과와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에 대한 면밀한 비교분석 없이 열정(熱情)만으로 나라를 이끌려고 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작금의 국정 성적표가 잘 보여준다.
4700만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부는 아마추어들이 움직이는 게 오히려 좋고, 제과점 세탁소 피부미용실 같은 자영업소는 전문성(자격증)을 갖춰야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과 인적쇄신 요구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워크숍과 간담회에서도 쏟아져 나온 마당이다.
청와대의 말이 일반의 상식과 동떨어진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만 해도 말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의 해석과 감도가 너무나 다르다. 최근 해외를 순방한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균형자론은 연성파워에 의한 조정자 역할”이라고 해명했다가 외국 상대들로부터 이런 면박만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차라리 사전적 정의(定義)를 바꾸지, 국제정치학에서 확립된 개념을 말해 놓고 멋대로 통하지도 않는 해석을 붙이겠다는 것이냐.”
밖에서는 당연한 상식이 왜 청와대에서는 통용되지 않을까.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내가 절대선(善)’이라는 독선의식에 빠져있기 때문이든,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든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 몫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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