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희]‘딥 스로트’가 없었다면

  • 입력 2005년 6월 6일 03시 03분


워싱턴포스트의 ‘우드스타인’(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살아서 ‘신화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흔치않은 언론인이다. 그 둘이 1972년 보도한 워터게이트 특종은 저널리즘 분야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사건은 기억되어도 그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는 통설을 그 둘처럼 보기 좋게 넘어선 기자들도 없다. 사건(워터게이트)과 함께 언론사(워싱턴포스트)와 편집장(벤저민 브래들리)의 이름을 나란히 역사의 전면에 기록한 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익명으로 남아 있던 일명 ‘딥 스로트(Deep Throat)’가 30여 년 만에 “나는 FBI 2인자였던 마크 펠트”라고 스스로 신분을 공개해 실명 대열에 합류했다. 외신에 따르면 실명의 인물들이 누리는 부와 영예를 그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동기라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딥 스로트’의 역할을 상기해 보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만약에 딥 스로트가 없었다면, 세상을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도, 우드스타인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도 없었을지 모른다. 딥 스로트가 없었다면, 지금은 반백이 된 우드워드가 저널리즘 교과서에 살아있는 영웅으로 등장하는 일도,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를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딥 스로트가 없었다면 미국의 역사가 지금과는 다르게 씌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딥 스로트가 진공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드라마를 좀 더 깊이 음미하려면 미국의 문화적인 배경부터 천천히 짚어 가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든든한 받침대로 삼고 있다. 이 법에 따른 판례를 보고 미국의 언론인들은 공익을 위해서 악의 없이 보도했다면 종국에는 대법원이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딥 스로트도 수정헌법 제1조 같은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그렇게 소신을 펼칠 수 있었을까.

내부자 고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의 개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사회학자 헤르트 호프스테데는 문화를 개인주의 성향과 집단주의 성향 두 가지로 대별하며 “집단의 목적보다 개인의 목적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개인주의 문화”라고 정의했다. 조직원으로서 조직에 등을 돌리는 일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도의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딥 스로트가 훗날 자신에게 가해질 보복이나 사회적인 냉소를 걱정했다면 과연 선뜻 나섰을지 의문이다.

딥 스로트가 마침내 베일을 벗는 반전의 장면에는 유명세에 으레 돈이 따르는 미국의 상업주의가 한몫한다. 실명 사회에서 익명은 돈을 벌 수 없다. “우드워드는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우리도 아이들 교육비 정도는 벌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여러 출판사와 접촉한 ‘딥 스로트’ 가족의 모습에서 영웅은 없다. 캐나다의 한 언론은 그를 가리켜 ‘결점 많은 인간이 복잡하고 중대한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논평했는데, 아마도 워터게이트 드라마의 최대 묘미는 이런 ‘결점 많은’ 인간이 적절한 법의 보호와 철저한 직업정신과 맞물릴 때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면전에서 돈을 좇는 일을 꺼리는 한국에서 내부고발자가 뒤늦게 돈벌이에 나서는 일은 미국보다 덜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법과 문화가 협조할 때 비로소 지켜지는 것이다. 특히 최근 언론 관련법이 나날이 강퍅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눈앞의 부패를 고발하는 제보자와 끈질긴 언론인의 멋진 합작품을 감상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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