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 칼럼]사림의 헛발질, 훈구의 헛기침

  • 입력 2005년 6월 9일 03시 05분


‘정치는 무능한 군주와 사나운 간신들의 발호(跋扈)로,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다.’ 2002년 겨울 대통령선거 직후 누군가 일간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역서(易書)를 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선자가 무능하다? 한국 정치가 필경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새 대통령에 대한 덕담은커녕 속말로 재수 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치는 그 요사스러운 도참(圖讖)예언에 수렴돼 왔다.

정권 측의 입에서 조선조 사림(士林)과 훈구(勳舊) 이야기가 나온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그 연장의 노태우 시대는 확실히 훈구적이다. 군부의 공신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전리품으로 공직을 싹쓸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공신 측근에 기대고, 공신들이 ‘혁명주체’ ‘평생동지’가 돼 훈구 명족(名族)으로 똬리 튼 것과 같다.

조선조 훈구들의 권귀(權貴) 추구는 이윽고 재야 사림의 도전을 부르고 만다. 군부 3대의 대통령 시절 실세들도 민심이반을 자초한 끝에 민주화 세력에 밀려났다. ‘훈구 타도’를 벼르던 민주산악회, 절치부심하던 감방동지가 뭉쳐 세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는 분명히 사림적이다. 그들은 문민, 국민, 참여정부로 간판을 바꿔 달고 30년간의 훈구 똬리를 쓸어내면서 ‘등산화’ ‘빵잡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문제는 그 사림정신의 헛발질이다. 몽매에도 그리던 정권을 잡고야 말았다는 도취, 자만, 돌출행동이 자책골로 이어졌다. 개혁 기치를 내걸고 ‘역사 바로 세우기’ ‘제2의 건국’ ‘과거 청산’을 외치는 것까지야 그렇다지만, 깨고 부수고 편 가르고 제 사람 심은 것 말고 남긴 게 무엇인가? 초심의 실천이 기세와 한풀이, 증오와 분노로 추진되면서 인사(人事) 폭이 제한돼 만사가 꼬이고 얽혀 들어갔다.

정치인 노무현의 사림정신은 1988년부터 돌출적으로 드러났다. 초선의 청문회 스타가 ‘국회의원 못해 먹겠다. 의사당에 로비의 그림자가 얼룩져 있다’며 돌연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잠적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무조건 복귀를 선언하고 돌아왔다. 나는 당시 칼럼에서 주장했다. “의원직을 내던진 바에야 관철해야 했다. 사퇴를 말든지 번복을 말든지 했어야 했다. 이 스타의 귀가(歸家)는 한국 정치의 또 다른 후퇴다”고.

돌이켜보면 그 사퇴 소동은 ‘사림시대’ 십수 년의 헛발질 헛바퀴를 표상한다. 또한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갈지자 행보의 원점인지도 모른다. 초심은 더할 나위 없이 올곧고 투명, 개혁, 균형을 실천하려는 열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정작 정권을 잡고 책임지는 위치에 올라서서는 도취, 돌출, 독선, 독주, 불균형 그리고 공직의 ‘낙하산’으로 상징되는 패거리 독식이 훈구들을 뺨칠 정도였다.

그러니 국민에게는 나아진 게 없을 뿐이다. 민주화만 되면 만사 해결될 듯이 선동하더니, 당장 국회에서 논란이 되는 것처럼 집값 땅값에서부터 소득구조 소비자물가 국가부채 개인부채 실업률 사교육비 조세부담액 빈곤자살에 이르기까지 개선은커녕 갈수록 퇴행하는 사림 정치가 절망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훈구는 헛기침한다. 여당이 재·보선에서 0 대 23으로 깨진 것은 야당의 선전이요, 사림의 헛발질에 대한 심판으로 본다. 그러므로 내년 지방선거, 차기 대선에서는 이기고 만다는 희망에 차있다. 이 또한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일이다. 별로 한 게 없는 ‘차떼기’ 야당이 여당의 자책골 때문에 이기고 있다면, 미래는 보나 마나 아닌가? 운 좋게 적실(敵失)로 버틴 축구팀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지 안 보아도 뻔하기 때문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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