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헨리 키신저]중국은 100년전 독일이 아니다

  • 입력 2005년 6월 9일 03시 05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장기적인 미국 외교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미중관계는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양당 정치’와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지 모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중국과의 관계가 1971년 이래 최고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상호 방문을 계획하고 있으며, 올해 각종 다자회담에서 예닐곱 차례 만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의회와 여론은 물론이고 정부 관리들은 환율에서부터 군사력 증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미국 안보에 대한 최대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세기 초기의 독일 제국주의에 비견되곤 한다. 전략적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19세기 유럽체제에서 강대국들은 결국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가정했다. 전쟁이라는 짧은 희생을 치르고 나면 결국에는 전략적 우세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에서 강대국 간의 전쟁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파멸적 재앙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승자도 없다.

더구나 군사적 제국주의는 중국의 스타일이 아니다. 제국주의 전통을 갖고 있던 옛 소련을 대체해 중국에 냉전시대의 군사적 봉쇄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러시아는 영토를 확장하고 모스크바를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중국의 현재 영토는 2000년 이상 유지된 것이다. 러시아 제국은 힘으로 통치됐지만, 중국 제국은 문화적 동질성으로 관리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중국의 군비증강에 홀려서는 안 된다.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중국의 국방예산은 미국의 20%에도 못 미친다.

중국의 인구와 교육 수준, 거대한 시장,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가 미국을 아시아에서 배제하는 쪽에 있는지 아니면 협력관계에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중국은 국익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전된 지역과 낙후된 지역의 격차를 좁히고, 경제와 기술의 혁신에 걸맞게 정치 체제를 정비하고, 생활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북핵 문제는 중요한 시험의 사례에 속한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중국의 ‘만만디’ 습성은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북핵 문제가 미국보다는 중국에 더 복잡한 문제라는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중국은 국경지대에서의 잠재적인 혼돈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 문제를 다루는 틀을 북한에서 넓혀 동북아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도’다. 중국은 미국을 아시아에서 몰아내려거나 인권에 대해 무시하는 듯이 보이는 정책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제국주의의 피해를 본 중국에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4000년간 자치 정권을 유지해 온 나라를 대하는 적절한 태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자손들을 20세기보다 더 악화된 혼란의 시대에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와 진전을 향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목격하게 할 것인가. 이는 아마 미중관계의 진로에 달린 일인지도 모른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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